"개구리 소년들 실종당일 사격장 탄두 주우러 갔다"

  • 입력 2002년 9월 30일 18시 32분


대구 달서경찰서는 지난달 30일 ‘개구리 소년들이 총기 오인사격으로 살해됐다’는 제보와 소년들이 실종 당시 유골이 발견된 장소 인근의 군부대 사격장으로 탄두 등을 주우러 갔다는 제보를 확보, 사실 여부를 수사중이다.

경찰은 주민 한모씨(43·무직·대구 달서구 월암동)가 28일 수사본부에 찾아와 “7월 중순 옛 대구 달서구청 부근에서 구두닦이 일을 하던 중 30대 초반의 남자 손님이 구두를 닦으면서 ‘군 복무를 할 때 소년들을 살해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고 제보했다고 밝혔다.

한씨에 따르면 이 남자는 ‘군 복무 당시 사격을 하던 중 어린이 5명이 나타나 2명이 총알에 맞아 1명은 사망하고 1명은 부상해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5명 모두를 다른 곳으로 옮겨 목을 조르고 총으로 쏴 죽였다’고 말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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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살인가… 조난사인가…

경찰은 문제의 발언을 한 남자의 인상 착의와 구체적인 대화 내용 등을 파악 중이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소년들이 실종될 당시 와룡산의 육군 모 부대 사격장(유골 발견지점에서 250m 거리에 위치)으로 탄두 등을 주우러 가는 것을 목격했다는 진술을 확보, 사격장이 소년들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지를 조사중이다.

숨진 박찬인(朴燦印)군의 친구인 김모군(19)은 “개구리 소년들과 군부대 사격장 주변에 탄두를 주우러 자주 놀러간 적이 있고 실종 당일에도 함께 사격장으로 가다가 사격장 부근의 연못 부근에서 ‘다리가 아프다’고 말한 뒤 헤어져 집으로 갔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군은 55년부터 94년까지 와룡산 일대에 주둔한 육군 모 부대의 간이 사격장에서 쏜 유탄이 광범위한 지역으로 날아갔을 수 있으며 당시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는 울타리가 없어 마을 어린이들이 사격장 주변 일대에서 탄두 등을 주우며 놀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군은 또 유골 발굴 현장에서 발견된 각종 총기류의 탄부들을 육안으로 검사한 결과 탄두 등이 심하게 부식된 점 등으로 미뤄 실종사건이 발생한 91년 이전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유골발굴 하루전 제보” 정신이상자로 밝혀져▼

한편 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5일 서울의 한 언론사에 개구리 소년의 죽음에 관해 제보한 사람은 정신이 불안정한 정모씨(40·무직)로 30일 밝혀졌다.

서울경찰청은 이날 경찰에 자진 출두한 정씨를 조사한 결과 “10여년 전 가출한 뒤 서울에서 노숙하면서 껌팔이 등을 하고 있으며 가출 직후 권투를 하다 머리를 다쳐 정신이 불안정한 상태로 91년부터 검찰과 언론사에 수시로 개구리 소년과 관련한 제보 전화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대구〓정용균기자 cavat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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