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에 맞서 배상결정 받은 중국집 배달원 김일중씨

  • 입력 2002년 8월 13일 18시 03분


“중국집 배달원이라고 얕보는 보험사의 콧대를 꺾어놓고 싶었습니다. 소액의 합의금으로 사건을 끝내려는 보험사의 횡포에 맞선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뒤 단돈 75만원에 합의하려는 보험사를 상대로 변호사도 없이 소송을 내 보험사가 제의했던 합의금의 20배나 되는 1500만원 배상 결정을 받아낸 김일중씨(31·사진).

김씨는 배상금을 받은 뒤에도 평소처럼 단무지 포장과 자장면 배달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언론에 자신의 사연이 보도된 뒤 쏟아지는 주위의 시선과 관심을 오히려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비슷한 피해를 보고도 대응 방법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좋은 선례를 보여줄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웃었다.

김씨가 서울 강동구 길동 근처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지난해 6월. 전문대를 졸업한 뒤 다니던 직장을 잃고 어렵게 중국집 일을 시작한 지 두달 만이었다.

전치 2주의 진단을 받았으나 목과 허리에 통증이 계속됐다. 그러나 D보험사는 “계속 입원하고 있으면 오히려 병원비를 자기 돈으로 내야 할 것”이라며 김씨에게 합의를 종용했다.

보험사의 허가가 없어 자기공명영상(MRI) 촬영도 할 수 없었다. 보험사의 고압적인 태도 때문에 화가 난 김씨는 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심했다.

변호사를 선임할 돈이 없었던 김씨는 인터넷에서 교통사고 관련 사이트를 뒤지며 ‘나홀로 소송’을 준비했다. 동료들과 함께 사용하는 하숙방에 누워 아픈 허리를 찜질하면서 혼자 소장을 작성했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대는 D보험사를 대리한 대형 로펌. 재판 자료가 불충분하다는 지적에 몇 차례나 법원을 드나들어야 했고, 문건 복사 등도 적지 않게 힘이 들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사고 소식조차 알리지 못했어요. 재판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암담하기도 했고, 지쳐서 혼자 포기하려고 한 적도 있었죠. 돌이켜보면 오히려 공부가 많이 됐어요.”

14차례나 법원을 드나든 끝에 김씨는 최근 판사의 조정을 거쳐 1500만원의 배상금을 받아냈다.

지난달부터 경기 성남시 분당의 한 중국집에서 배달을 다시 시작한 김씨는 돈을 모아 직접 식당을 차리는 것이 꿈이다. 9월에는 한국방송통신대 국문과 3학년 과정에 복학할 예정이다. 그는 군 복무 시절에 쓴 시가 군 내부 잡지에 실린 적도 있다며 은근히 자랑했다.

김씨는 “열심히 재판에 임했던 것처럼 앞으로 최선을 다해 삶을 꾸려나갈 것”이라며 다시 ‘철가방’을 들고 오토바이에 올랐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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