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법무 이임사 "누구도 수사에 개입말라"

  • 입력 2002년 7월 11일 16시 39분


송정호(宋正鎬) 전 법무부장관은 11일 이임사를 통해 "검사는 외압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가져야 한다"며 "누구도 검찰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宋像鉉)이 말한 '싸워서 죽는 것은 쉬우나 길을 내 줄 수 없다'는 뜻의 고사 '戰死易 假道難'을 인용하면서 검사는 정도(正道)를 내 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많은 검사들은 송 전 장관의 이임사가 담고 있는 뜻이 법무부장관 교체 배경과 일맥상통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송 전 장관이 청와대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차남 홍업(弘業)씨 등에 대한 검찰 수사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기 때문에 경질됐다는 것이다.

또 김정길(金正吉) 신임 법무부장관의 재기용에 대해서는 임명권자의 영향력 확대 의도와 현 정권의 인물난이 맞물린 결과라는 해석하고 있다.

법무부의 한 검사는 "송 전 장관이 큰 실수가 없었고 김 장관이 송 전 장관과 성향이나 경력 출신지역 등에서 특별히 다른 게 없는 점을 감안하면 교체 원인은 송 전 장관과 청와대의 불화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검사는 "송 전 장관은 청와대와의 불화 때문에 오래 전부터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고 말했다.

송 전 장관은 5월말 청와대 관계자에게서 "검찰총장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수사를 중단시키라"는 요구를 받고 이를 거부했으며 이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송 전 장관은 11일 개각 명단이 발표된 직후 법무부 간부들이 이임사 초안을 만들어 전달하자 이를 물리치며 "내가 이미 써놨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간부급 검사는 "정권이 검찰을 좌지우지 못하도록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는 이정표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김 신임 장관의 임명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검사들은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지방의 한 검사는 "같은 정권에서 법무부장관을 중임한 전례가 없다"며 "대통령이 아들들의 구속으로 고조된 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자신의 뜻을 잘 파악하는 김 장관을 다시 선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김 신임 장관은 임명장을 받기 전 청와대와 검찰의 불협화음에 대한 의견을 묻자 "내가 말할 단계가 아니다.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말을 아꼈다.<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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