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장 썰렁… 공항-고속道 북적

  • 입력 2002년 6월 13일 23시 17분


노인들은 '한표' [사진=박영대기자]
노인들은 '한표' [사진=박영대기자]
지방선거 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6·13 지방선거는 후보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정당을 보고 투표한 사람이 많았지만 진지하지 않은 투표 행태도 나타났다.

회사원 김모씨(37·서울 동작구 대방동)는 이날 오전 서울시의원과 구청장, 구의원 투표용지를 받아들곤 무조건 같은 기호를 찍고 투표소를 나왔다.

김씨는 “그동안 온통 축구에 신경쓰느라 솔직히 누가 출마했는지, 기호 ×번이 누군지 이름도 잘 몰랐다”며 “아내가 투표하고 놀러가자고 해서 빨리 찍고 나왔다”고 말했다.

대학생 한모씨(26·서울 송파구 가락동)는 5장의 투표 용지를 순서대로 활용해 첫 장에는 1번, 두 번째 장에는 2번을 찍었다고 말했다.

젊은이는 "놀러" [사진=박영대기자]

회사원 신모씨(26·여·서울 관악구 신림동)는 얼굴을 보고 투표한 경우. 신씨는 “광역과 기초단체장 후보 가운데 선거 벽보의 사진을 보고 가장 인상이 좋은 사람을 찍었다”며 “나머지 3장의 투표용지는 아예 기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바른선거시민모임 이명희(李明姬) 회장은 “이번 선거는 월드컵 때문에 유권자들의 관심이 낮은 것이 사실”이라며 “그렇다고 투표를 하지 않거나 마구잡이식으로 투표하는 건 민주시민으로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기권을 하나의 의사 표시로 선택한 사람도 많았다. 회사원 고병천씨(53·서울 강동구 성내동)는 “선거 때만 국민의 종이라고 하다가 당선되면 태도가 바뀌는 게 정치인들”이라며 “내 참정권이 그렇게 이용되는 게 싫어 기권했다”고 말했다.

역시 투표하지 않은 대학원생 이은구씨(32·서울 서초구 서초동)도 “투표 안한 것도 하나의 의사 표시로 봐야 한다”며 “투표용지에 왜 기권 항목이 없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투표일이 임시 공휴일이어서 투표를 포기한 채 해외로 여행을 떠나거나 일찍 투표를 마친 뒤 나들이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 ‘선거일〓노는 날’로 인식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날 인천공항에는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들이 대거 몰려 오전 10시경에는 출국장에 여행객들이 100m나 길게 늘어섰고 수속에도 최고 1시간이나 걸렸다.

최근 탑승률이 50%를 밑돌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이날 오전 중국과 일본행 항공기 탑승률이 80%까지 올라갔고 오후에 출발한 괌, 사이판, 방콕행 등은 100% 예약을 기록했다.

이날 경부고속도로와 자유로, 88올림픽대로 등 서울 외곽으로 나가는 도로도 가족 단위의 행락객들이 탄 차량들로 붐볐다. 또 전국의 골프장들도 휴일 골프를 즐기려는 골퍼들이 새벽부터 몰려들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이호갑기자 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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