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캠핑족 "원더풀 코리아"

  • 입력 2002년 6월 8일 22시 42분


해가 한강 너머로 기우는 가운데 석쇠에서는 돼지고기 바비큐가 흰 연기를 내며 입안에 침을 돌게 했다.

박원석씨(26·국민대 법대 4년)는 땀을 훔치며 고기를 뒤집었다. 초대한 외국인들은 30분 뒤인 오후 8시에 올 예정이었다.

6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강공원 내 난지캠핑장 잔디밭에서 분주하게 음식을 장만하고 있던 7명의 한국인들은 국민대에서 목회활동을 준비하는 원필성(元弼聖·41) 목사와 원 목사가 이끄는 이 대학 동아리 ‘EVC(English Venture Club)’의 학생들. 이날 원 목사 일행은 캠핑장을 찾아 1인용 텐트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 외국인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유럽에서 유학할 때 혼자 배낭을 메고 각국의 캠핑장을 돌아다녔죠. 텐트 속에서 밥을 해먹을 때 말을 걸며 음식을 나눠주는 외국인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월드컵을 보러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이 캠핑장에서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원 목사는 이들을 저녁에 초대하자는 뜻을 학생들에게 전했다. 학생들은 흔쾌히 동의했고 이날 음식을 준비해 캠핑장을 찾은 것.

조희진씨(22·여·역사학과 4년)는 “홍보가 덜 된 탓인지 외국인들이 생각보다 많이 찾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어 아쉬웠는데 경기장이 아닌 캠핑장에서 자원봉사를 한다는 기분으로 왔다”고 웃으며 말했다.

학생들은 상추를 씻고 감자와 고구마를 구워 가져온 과일 빵과 함께 간이식탁에 올려놓았다.

고기가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갈 무렵 스코틀랜드에서 온 피터 아워디스(30·정원사)와 폴란드인 보이텍 사르노스키(22·바텐더)가 이들을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라고 서툰 한국말로 인사하는 이들을 학생들은 환한 웃음으로 맞이했다.

박원석씨가 사르노스키씨의 접시에 고기를 담아주며 “한국이 이겨서 미안하다”고 하자 사르노스키씨는 “다음 경기는 우리가 이길 테니 걱정하지 않는다”고 응수했다.

학생들은 서툰 영어와 손짓 발짓으로 월드컵과 한국의 인상 등에 대해 대화하며 우정을 나눴다. 맥주 등 술이 오가면서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근처에서 야영을 하던 독일인도 참가해 얘기꽃을 피우는 동안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학생들은 수박 등 준비해온 먹을거리를 외국인들에게 나눠주며 작별을 했다.

아워디스씨는 “학생들이 스스로 찾아준 것이 참 고맙다”며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 이런 기회가 더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경호씨(26·법대 4학년)는 “프랑스의 예선 마지막 경기가 있는 11일에 다시 찾아와 더 많은 외국인 캠핑족들을 초대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난지캠핑장에는 현재 프랑스 폴란드 캐나다 독일 등 11개국에서 온 외국인 40여명이 캠핑을 하고 있다.

캠핑장 관리책임자인 백상영(白相榮·52·한국캠핑문화연구소 사무국장)씨는 “이곳을 찾는 한국인 캠핑족들이 외국인들을 초대해 저녁을 같이 먹는 일이 많아졌다”며 “우리나라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기회라고 생각해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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