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구청 재해방지 행정 오락가락

  • 입력 2002년 5월 28일 18시 19분


공사 현장 관계자가 대상 절개지를 가리키고 있다. - 안철민기자
공사 현장 관계자가 대상 절개지를 가리키고 있다. - 안철민기자
주택가 인근 산 절개지의 붕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보강 공사를 벌이던 토지 소유주에게 관할 구청이 일방적으로 공사를 중지시키고 원상복구 명령까지 내렸다가 행정소송에서 패소했다.

특히 구청 측은 토지 소유주에게 안전보강 공사를 하도록 허용한 후 불과 4일 만에 사소한 절차상의 문제점을 들어 공사중지를 명령해 재해 위험은 아랑곳없는 권위 행정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종로구청 행정소송 패소▼

▽절개지 안전보강공사 진행〓서울 종로구 신영동 150의 6 일대 S, J빌라 등 2개 빌라(150여가구) 뒤쪽의 북악산 자락 임야를 소유한 김수(金洙·50)씨와 이들 빌라 주민이 종로구청으로부터 ‘안전조치 명령’을 받은 것은 지난해 4월. 종로구청은 집중호우가 내릴 경우 이들 빌라에서 불과 1∼2m밖에 떨어지지 않은 산 절개지가 붕괴될 우려가 있다는 안전진단 결과가 나왔다며 안전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김씨는 빌라 주민들이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자 독자적으로 공사를 진행키로 하고 구청 측과 협의를 거쳐 같은 해 10월 8일 빌라 뒤편의 절개지 임야(길이 120m×폭 15m)에 대한 공사에 착수했다.

▼절차상 문제 이유 복귀명령▼

▽구청 측의 공사중지 및 원상복구 명령〓공사가 진행되자 일부 빌라 주민들은 소음과 자연경관 훼손 등을 이유로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구청 측은 △김씨가 공사감리자를 선임하지 않았고 △공사 시행 전 주민설명회를 개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10월 12일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구청 측은 이어 빌라 주민들이 공사 범위와 공법 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자 김씨에게 공사가 일부 진행된 구간(약 30여m)을 원상 복구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재난 예방을 위한 공사인데도 사소한 절차상 문제를 이유로 공사를 중지시킨 것은 부당하다”며 올 1월 서울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재량권 남용” 판결▼

▽법원 판결〓서울 행정법원 행정12부(김영태·金永泰 부장판사)는 최근 김씨가 종로구청장을 상대로 낸 재해예방공사 중지명령 등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씨는 공사 현장에 토목기술 자격을 가진 현장소장을 상주시키고 S빌라의 경우 96가구 중 93가구로부터 공사동의서를 받는 등 공사 전 주민 동의를 구한 점 등으로 미뤄 볼 때 구청 측의 공사중지 처분에는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암반붕괴 등의 수해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보강 공사의 긴급한 공익적 필요성에 비춰볼 때 구청 측의 공사중지 명령은 재량권을 남용한 위법한 처분”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종로구청 측은 “주민들의 민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공사중지 처분을 내렸지만 다소 무리가 따랐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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