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관훈토론회]‘원칙보다 현실’ 盧 변화조짐

  • 입력 2002년 5월 14일 23시 38분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보다는 다소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답변내용이다. 노 후보는 ‘폐지’를 주장했던 이전과는 달리 ‘대체입법’이나 ‘형법 소화’쪽으로 한걸음 물러섰다. 노 후보는 “폐지라고 말해왔으나 표현이 조금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내에서는 그동안 노 후보의 ‘국가보안법 폐지론’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인사들이 많았고, 당론 수렴이라는 명분하에 노 후보가 입장선회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폐지’라는 용어가 갖는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그가 ‘용어적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대체입법’이나 ‘형법 소화’도 결과적으로는 폐지론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당초 집권초기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했으나 야당과의 협상과정에서 ‘보안법 개정’ 쪽으로 수정했었다.

대미(對美) 관계에 있어서도 노 후보는 가능한 한 말을 아끼면서 현실론을 강조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대해서는 “정권이 바뀌면 그에 맞춰 대응해야 한다. 어느 정부라도 한미우호관계를 돈독하게 해야 하고, 남북관계에서 손발을 잘 맞춰야 한다”는 ‘모범답안’을 제시했다.

이 또한 ‘악의 축’ 발언 이후 대북 강경정책을 주도해온 부시 행정부에 대한 국내 일각의 반미(反美) 기류와는 다른 현실주의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통일후의 주한미군 주둔 필요성도 다시 확인했다. 그러나 방미(訪美) 문제와 관련해서는 ‘사진이나 찍는’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방문에 대해서는 여전히 거부감을 나타냈다.

‘성장’보다는 ‘분배’에 초점을 두던 노 후보의 경제관도 두 개념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그는 먼저 “취재 보도과정에서 왜곡된 부분이 있었다”고 전제한 뒤 “복지가 성장에 부담이 돼서는 안 된다. 결코 성장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며, 성장을 저해하면서까지 분배를 추구하지도 않겠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는 경선과정에선 이인제(李仁濟) 후보와의 ‘성장이냐, 분배냐’의 공방에서 분배 쪽을 더 강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었다.

언론관에 있어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는 ‘공익적 목적’을 앞세워 “필요하다면 언론사의 소유지분제한도 가능하다”고 소신을 꺾지 않았고, ‘노사모’의 특정신문 절독운동에 대해서도 “그들의 자유이다”라고 개입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노 후보는 대북관계에 있어서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의 계승을 천명했고, 남한의 정통성에 입각한 현실주의 정책을 주장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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