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동문건 파문]청와대 보고용 극비문서 가능성

  • 입력 2002년 3월 11일 18시 35분


이수동(李守東) 전 아태평화재단 상임이사의 자택에서 압수된 ‘정권재창출’과 ‘언론개혁’ 관련 문건은 누가, 무슨 목적으로 작성했을까.

금융감독원 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지앤지그룹 회장 이용호(李容湖)씨의 돈 5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이수동씨가 차정일(車正一) 특별검사팀에서 문건 입수 경위에 대해 진술을 거부함에 따라 문건의 작성 주체와 목적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특검팀은 이들 문건이 이수동씨에게 전달된 사실과 관련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에 비중을 두고 수사 중이다.

이런 가운데 아태재단에 근무한 적이 있는 한 관계자는 11일 본보 취재팀에게 “2001년 1월 말 중앙일간지 세무조사를 전후해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등이 작성한 언론개혁 관련 문건이 아태재단 내에서 많이 나돌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수동씨 집에서 발견된 문건들의 제목이 너무 길고 서술식이어서 사실상 제목으로 보기 어렵다”며 “이런 점에서 통상적으로 문건의 작성자나 작성시기 제목을 정확하게 기재하지 않는 청와대 보고용 문서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아태재단 고위 인사들은 자의든 타의든 이 같은 문서를 수시로 입수했다”고 덧붙였다.

법조계 안팎의 해석도 다양하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통치권 강화 차원’이라는 노골적인 표현을 사용한 점으로 볼 때 언론 세무조사를 기획한 핵심권력층이 직접 작성하고 극소수 인사들에게 배부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정부 기관에서 대외비 이상 비밀로 분류된 문서가 개인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제목이 삭제된 복사본이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이수동씨가 고령이고 문서 열람에 익숙지 않은 점을 감안해 내용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길게 제목을 붙였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관측에도 불구하고 이수동씨가 입을 다물고 있는 데다 문건의 존재 사실을 공개한 특검팀도 문건의 출처나 내용 등에 대해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는 방침이어서 의구심은 갈수록 깊어질 전망이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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