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2002노동시장’ 지각변동…비정규직 급증

  • 입력 2002년 2월 7일 17시 31분


한국의 ‘대표 기업’ 격인 삼성전자는 올해 경력직원 채용비중을 40%로 잡고 있다. 지난해의 27%에 비하면 13%포인트나 높아졌다. 회사 관계자는 “당초 전체의 절반 정도를 경력자로 채용하려 했다가 대졸신입을 너무 뽑지 않으면 국가적으로 ‘청년 실업’이 더 심각해질 우려가 있어 비율을 조금 낮추었다”고 귀띔한다.

사상 최악의 취업대란이라는데도 요즘 문방구에서는 종이 이력서가 팔리지 않는다. 신문이나 전문잡지 등 오프라인 매체에서 대기업의 채용공고도 보기 힘들어졌다. 반면 리크루트 인크루트 등 온라인 채용업체는 대부분 매출목표를 지난해보다 100% 이상 늘려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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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동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갖가지 변화가 눈앞에 나타나고 있다.

채용방식은 그룹별로 1년에 한두 번 대규모로 뽑아 일제히 계열사로 배치시키는 ‘그물형’ 에서 입맛에 맞는 경력직원만 골라 뽑는 ‘낚시형’으로 바뀌었다. 영어 국어 상식 등의 실력을 겨루던 입사시험도 없어지고 인터넷에서 1차 심사한 뒤 곧바로 면접에 들어가는 인터넷 채용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 가운데 비정규직이 급증하면서 전반적인 고용불안은 가속화되는 추세다.

이런 채용패턴을 꿰뚫고 있는 흐름은 ‘인간관계 중심’에서 ‘직무중심’으로의 변화. 한국노동연구원의 강순희(康淳熙) 연구위원은 “미국이나 유럽은 철저하게 직무를 분석해 이에 맞춰 사람을 채용하고 연봉을 정하고 있다”며 “한국도 외환위기 이후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면서 채용방식이 직무중심으로 급속히 방향을 틀었다”고 분석했다.

▽대기업들의 ‘순혈(純血)주의’ 포기〓대기업에서는 ‘입사동기’라는 말이 사라지고 있다. 그룹별로 매년 한두 번 한꺼번에 신입사원을 뽑아 교육시키고 일제히 계열사로 배치하는 공채제도가 사실상 없어졌다. 대신 외부 경력직 사원의 비중은 크게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대졸사원 2200명을 채용했다. 반도체 가격하락으로 극심한 침체를 겪었던 기업치고는 많은 인원이다. 이 가운데 경력사원 비중은 전체의 27%인 600여명. 1997년 말 외환위기 이전에 경력직 채용인원이 연간 10여명에 불과하던 것을 생각하면 폭발적인 변화라고 할 만하다.

LG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주력기업인 LG전자의 채용인원 2700명 중 경력사원의 비중이 30%정도였다. LG화학은 400명 중 25%, 시스템통합(SI)업종인 LG CNS는 940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495명이 경력직 사원이었다.

삼성전자 인재개발원의 우종삼 부장은 “연공서열이 가장 철저했던 일본의 소니도 최근 몇년 사이 경력직 사원의 비중이 50%를 넘었다”며 “기업이 정년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처지에 신입사원을 뽑아 차근차근 교육시키고 승진시키는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시대감각에 뒤떨어지는 사고방식”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안정성을 고려하는 대기업들이 이 정도 수준이고 중견기업까지 포함하면 경력직 채용비중은 대폭 높아진다. 노동부에 따르면 대기업, 공기업, 금융기업의 평균 신입사원과 경력자 비율은 최근 5년 사이 7 대 3에서 3 대 7로 완전히 역전됐다.

▽문방구에서 종이 이력서가 안 팔린다〓기업 홈페이지에서 이력서 양식을 내려받아 온라인으로 제출하는 관행이 대기업 채용에서는 이미 굳어졌다. 대학에서 기업설명회를 열어 취업원서를 뿌리고 대학생들은 이를 얻기 위해 애타하는 모습은 이제는 추억거리로만 남게 됐다. 한두 명을 뽑는 채용공고에서 1000명 이상씩 몰리는 것도 인터넷채용 때문.

올해 주요 온라인 채용사이트업체가 잡고 있는 매출 목표는 대부분 작년대비 100%를 넘는다. 지난해 35억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보다 250%의 성장세를 보인 온라인 채용업체 인크루트의 올해 매출목표는 작년의 두 배인 70억원이다. 잡링크 역시 지난해 21억원보다 2배 이상 많은 49억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비정규직 갈수록 늘어〓채용전문기관들이 한결같이 예상하는 채용패턴의 큰 변화 중 하나가 비정규직의 급증이다.

인크루트가 올해 채용계획을 세운 연 매출 500억원 이상 1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비정규직으로 채우겠다는 인원이 전체 채용예정인원의 64.2%인 3만488명이나 된다. 노동부의 지난해 12월 통계에서도 이미 임시직 일용직 등 비정규직이 52%로 정규직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강순희 연구위원은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작업 숙련주기가 짧아져 기업들이 쉽게 뽑고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방식을 선호하는데 이런 현상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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