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에서 전구가 터졌어요"

  • 입력 2002년 1월 3일 20시 16분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국내 조명업계의 '선두주자'를 자처하는 O사의 가정용 전구가 사용도중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해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16일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이모(35·여)씨는 오후 6시경 집 욕실에서 샤워를 하다 세면대 위쪽에 설치된 전구 2개 중 하나가 갑자기 "펑" 소리를 내면서 터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씨는 터진 전구 파편으로 인해 허벅지 부위에 지름 2㎝가량의 찰과상 및 화상을 입었다.

이씨는 "너무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수건만 걸치고 방으로 들어와 쓰러졌다"면서 "나중에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다리에 유리가 꽂혀있었고 피가 나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다음날인 17일 이씨는 O사로 전화를 해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이씨에게 돌아온 것은 "제품문제가 아니라 전구 덮개도 없이 욕실에서 사용한 것이 잘못"이라는 답변과 다음날 집으로 배달된 새 전구 두 개 뿐이었다.

이씨의 욕실에 설치된 전구는 O사의 '수퍼룩스 크립톤 램프(60W)'. 이 제품은 기존의 백열전구보다 크기를 작게 하면서 발광효율을 높이기 위해 전구 내부에 '크립톤 가스'가 주입돼 있다.

회사측은 "욕실처럼 습기가 많은 곳에서 커버가 없는 등기구를 사용한 것과 전구의 유리구가 아랫쪽을 향하지 않고 정면을 향해 있는 등 설치방법이 폭발 원인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고에 대해 강원대학교 조명연구실 김 훈 교수는 "크립톤 가스는 필라멘트를 구성하는 텅스텐이 잘 증발하지 않으므로 전구의 효율과 수명을 늘이고 크기도 줄어드는 등 여러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교수는 "뜨거운 물이 든 유리잔을 갑자기 찬물에 담그면 깨지는 것과 같이 유리에 찬물이 튀어서 균열이 갔을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크립톤 전구가 일반 전구에 비해 유리구 온도가 더 뜨거워서 더 잘 깨지는 이유가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측정 등을 해보아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사고 가능성에 대해 소비자들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O사의 제품 포장에는 이러한 위험성에 대한 주의사항이 한줄도 적혀있지 않다. 단지 제품 카탈로그에만 '고열이 발생하므로 밀폐형에 쓰십시오'라는 권고사항만이 표시돼 있을 뿐이다.

회사측 관계자는 "사용 장소에 따른 제품별 사용법과 주의사항을 개별 박스에 표시해야 하는데 비용문제로 아직까지 하지 못하고 있다"며 "올 7월 1일 시행예정인 제조물책임(Product Liability)법에 대비해 올해부터는 각 제품에 위험성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고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러한 전구 폭발사고는 일년에 한두건씩 접수되고 있다"며 "욕실 등 습기가 많은 장소에서는 반드시 커버가 있는 등기구를 사용할 것"을 당부했다.

최건일<동아닷컴 기자>gaego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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