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희망이다/미국 오하이오주]고교때 진로교육

  • 입력 2001년 11월 23일 18시 28분


법학 시간에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법학 시간에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적성과 능력에 맞는 ‘길’을 찾는 일은 인생의 나침반을 얻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학교에서도 입시위주의 교육 때문에 진로교육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길을 탐색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는 선진국의 진로교육 현장을 소개한다.》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시의 위드로우 고교 11학년생인 셰리 존슨(17)은 학교에서 2년째 선택 과목으로 법학을 공부하고 있다.

법학 시간에는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찰스 코울 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교복정책은 학부모가 자녀를 기르고 교육시킬 권한을 침해하는가’ 등의 판례를 놓고 동료 학생들과 변호사 검사 역할을 맡아 열띤 논쟁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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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오하이오주에서 열리는 모의재판 경연대회에 참가해 수상한 경력이 말해주듯 셰리는 변호사가 되는 게 꿈이다.

청소년기에는 누구나 그렇듯 셰리도 졸업 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여행 전문가나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고교에 들어와서 관광 관련 과목 강의를 듣고 실습도 해봤는데 ‘이건 아니다’는 싶어 법학으로 진로를 바꿨지요. 학교에 진로교육 프로그램이 없었더라면 대학에서 시행착오를 겪느라 시간만 낭비했을 거예요.”

▽열린 진로교육〓미국 오하이오주는 학생들의 진로 고민을 덜어주는 체계적인 진로교육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본격적인 진로교육은 9∼12학년(한국의 중3∼고교 3년)의 고교 4년 동안 이뤄진다. 9학년이 되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등 필수과목 외에 ‘진로 개발’ 과목을 수강하면서 개인의 진로 목표를 설정하고 구체적인 직업 관련 수업을 듣게 된다.

셰리가 다니는 위드로우 고교는 교내에 ‘직업교육 빌딩(Vocational Building)’이 있어 ‘회계’ ‘여행과 관광’ ‘컴퓨터 프로그래밍’ ‘법학’ ‘비즈니스와 마케팅’ 등 5개 과목을 개설하고 있다. 5개 과목 외에 다른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인근의 다른 학교에서 진로교육 과목을 수강해도 된다.

예를 들어 아이켄 고교에는 ‘상업미술과 디자인 기술’ 과목이 개설돼 있고 웨스턴 힐스 고교에서는 ‘자동차 기술’ ‘그래픽 미술’ ‘서비스업’ ‘부동산 거래’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 수업을 개방해 놓고 있는 학교들은 학교별 직업교육 관련 커리큘럼을 담은 수강 신청서를 비치해 두고 학생들의 신청을 받는다. 면접 요령과 이력서 쓰는 법을 배우는 것은 필수 코스다.

'여행과 관광' 수업시간

▽체험으로 배우는 직업탐색〓10학년이 되면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잡 셰도윙(Job Shadowing)’은 특정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는 프로그램이다. 위드로우 고교 졸업반인 아만다 조르단양(18)은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스튜어디스를 1주일간 졸졸 따라다닌 적이 있다. 그녀는 “스튜어디스가 생각보다 육체적으로 힘든 직업인 것을 깨달았다”며 “비행기까지 따라 타지 못해 아쉽다”고 웃었다.

11학년과 12학년때는 인턴쉽(Internship) 프로그램에 참가해 직접 일을 하면서 돈도 번다. 테프트 정보기술 고교에서 ‘테키(Techy·정보기술에 밝은 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지방시 킨케이드군(18·12학년)은 방학 때마다 신시내티 시내의 기업체에서 컴퓨터 컨설턴트로 일하며 용돈도 벌어 쓴다. 지난해 여름방학 때는 프라이맥스라는 회사에서 시간당 10달러를 벌어 적지않은 목돈을 마련했다.

▽진로여권〓오하이오주 진로교육의 결정체는 ‘진로 여권(Career Passport)’이다. 진로여권이란 학생의 진로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해온 활동들을 기록한 A4 용지 크기의 서류철이다. 진로여권의 첫 장에는 출신 고교장의 학교 소개가 나온다. 학교의 역사, 교육철학, 독특한 교육과정 등을 편지 식으로 소개하고 있어 마치 전체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기업체 의 추천서 같다. 그 다음 장에는 ‘기업 회계분야에서 석사학위 받기’ 등 학생 개인의 진로 목표와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교 시절의 어떤 활동을 했는지, 수상 실적, 상장 사본, 학업 성적, 졸업장 등이 첨부돼 있다. 실업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90년 처음 도입됐고 98년에는 전체 고교생들에게 확대 적용됐다. 현재 85% 가량의 학생들이 진로여권을 작성하고 있다.

신시내티교육청은 진로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 관내 기업을 대상으로 ‘진로여권을 요구하세요’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대다수 기업들은 사원을 뽑을 때 진로여권을 중요한 판단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신시내티교육청 켄 시퍼맨 진로교육국장은 “진로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이 자신에게 맞는 진로를 찾도록 도와주고 지역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키우는 것”이라며 “신시내티 교육예산의 1∼2%를 진로교육에 쓰고 있다”고 말했다.

<신시내티〓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진로교육 받으면 공부도 잘해요"▼

‘진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공부도 잘한다.’

진로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있는 미국 신시내티교육청이 내린 결론이다.

신시내티교육청은 ‘진로교육 프로그램 평가서’라는 자료를 통해 96년부터 99년까지 4년간 학생들의 학교 생활을 추적 조사한 결과 진로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학업 성적도 우수하고 출석률도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오하이오주가 9학년을 대상으로 도덕 수학 읽기 쓰기 등 4개 과목 시험을 치른 결과 진로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성적이 훨씬 우수한 것으로 분석됐다.

99학년도 수학 시험의 경우 진로교육을 받은 9학년들의 합격률은 19%였으나 진로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들은 12%로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읽기 시험에서는 진로 교육을 받은 학생들(53%)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40%)간의 합격률이 13% 포인트로 더욱 벌어졌다.

쓰기에서도 진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합격률은 66%인 반면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45%로21% 포인트나 차이가 났다.

또 진로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출석률은 89%였으나 받지 않은 학생들은 80%였으며 유급율도 진로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들이 더 높았다. 진로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학교 생활에 더 충실하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보고서는 “진로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며 “더 많은 학생들이 진로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시내티〓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미국 신시내티 교육청의 초등학교 진로교육 목표▼

1학년

·돈 쓰는 것과 저축하는 것의 차이를 안다.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끝낼 줄 안다.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

·내가 잘 할 줄 아는 일을 이야기할 수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존중한다.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한다.

2학년

·내 행동이 남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도서실에서 직업에 관한 책을 읽는다.

·학교에서 배운 기술이 학교 안팎에서 중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비판을 수용하고 그것을 통해 배울 줄 안다.

·학교에서 생활하는 성인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하는 일의 종류에 대해 이야기할 줄 안다.

·나의 관심사항 3가지에 대해 글을 쓸 줄 안다.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본다.

·집에서 맡은 임무를 수행할 줄 안다.

·학교 동료들과 단체로 일할 줄 안다.

3학년

·목표를 설정할 줄 안다.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

·금년에 3개의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한다.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줄 안다.

·내의 관심 분야를 포함해 직업 관련 책을 만든다.

·기업이 가족의 필요와 요구에 어떻게 부응하는지 안다.

·우리 마을에 있는 여러 직업들을 구분할 줄 안다.

·직장 학교에서 규칙을 준수하는 일이 중요함을 안다.

·내가 더 연마해야할 기술 두가지를 묘사할 수 있다.

·비판을 수용하고 내 것으로 만들줄 안다.

·성공하기 위해 어떤 옷차림을 해야 하는지 안다.

·내가 수행한 일의 결과가 나를 대변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4학년

·건설적인 비판을 수용할줄 안다.

·마무리한 일은 제껴둘 수 있다.

·학습 기술이 직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설명할 수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친구나 어른과 함께 일할 줄 안다.

·나만 아는 나에 대한 무언가를 이야기할 줄 안다.

·행동 전에 문제를 철저히 파악한다.

·일에 대해 적

극적인 태도를 가진다.

·관심 분야의 직업 2가지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다.

·정보를 제공하거나 역할 모델이 될만한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나의 외모에 책임질 줄 안다.

·내 일에 대한 타인의 평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잘 하는 두 가지 기술을 묘사할 줄 안다.

5학년

·직업과 관련된 어휘를 안다.

·일주일치 계획표를 짠다.

·내게 적합한 직업교육이 무엇인지 글을 쓸 수 있다.

·경제에서 소비자의 역할을 정의할 수 있다.

·개인 사업체를 경영할 때의 장단점을 에세이로 쓴다.

·신중한 의사결정의 필요성을 깨닫는다.

·세금과 정부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취미와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줄 안다.

·학교밖 누군가를 위해 일한다.

·내 진로와 교육 목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6학년

·친구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직업박람회나 직업 관련 프로그램에 참가한다.

·대학을 방문하고 나도 거기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을 만나 이야기한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이야기할 수 있다.

·학교를 졸업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취업용 면접이나 서류 작성을 해본다.

·개인의 목표와 달성 방법을 이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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