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꿈나무 장학금]30년 모인 정성 인재양성에 밑거름

  • 입력 2001년 4월 1일 18시 52분


지난해 11월 충북 충주에서 시각 및 청각장애 학생 363명이 점자타자 미술 뜨개질 등 평소 갈고 닦은 기량을 뽐냈다. 동아일보와 교육부가 주최한 제1회 전국 장애학생 직업기능 발표대회는 31개 학교에서 모인 장애학생들의 ‘투혼’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 대회는 동아꿈나무재단에 기탁된 독자 성금으로 개최된 최초의 행사였다. 성금의 주인공은 부산에서 개업의로 일했던 고 인산 오창흔(仁山 吳昶昕)씨.

그는 77년 4월 동아일보사를 찾아 3500만원의 장학금을 내놓으며 “이 돈을 동아일보 창간 80주년인 2000년부터 신체장애 학생과 문예창작 진흥사업을 위해 써 달라”고 말했다.

“청각장애로 고생하다 두 달 전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딸 수인(壽仁)의 유언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오씨의 설명에 당시 이동욱(李東旭) 동아일보 사장은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오씨는 84년까지 7차례에 걸쳐 3억9700여만원을 기탁했다. 이 돈은 이자가 쌓여 19억9600여만원으로 불어났다. 동아일보사는 오씨의 뜻을 받들어 지난해 장애학생 기능대회를 열었고 ‘인산(仁山)문예창작펠로십’을 제정, 촉망받는 젊은 소설가 두명(조경란·김운하)에게 750만원씩 장려금을 지원했다. 오씨의 성금에서 나오는 이자로 이 두 행사는 매년 이어지게 된다.

동아꿈나무재단에 기탁된 성금은 총 15억866만원. 현재 이자를 포함해 47억7626만원으로 불어났다. 이 적지 않은 기금에는 성금을 맡긴 215명의 소망이 담겨있다.

최초로 성금을 맡긴 독지가는 제주 서귀포에서 감귤농장을 경영하던 현암 오달곤(玄岩 吳達坤)씨. 그는 71년 동아일보를 찾아와 당시로서는 거액인 100만원을 내놓으며 “창간 100주년인 2020년부터 가난한 영재들을 위해 이 돈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오씨의 사연이 소개되자 전국에서 독지가들의 성금이 줄을 이었다. 성금에는 정신박약아, 장애아동, 기능인, 고아 등 성금 기탁자가 희망한 용도와 사용 시점이 따라붙었다. 동아일보사는 85년부터 재단법인 동아꿈나무재단을 설립, 이들의 소망과 기금을 관리하고 있다.

현재 재단이 관리하는 기금은 두가지다. 첫째는 오달곤씨의 성금 이후 30년간 적립된 일반인들의 성금 47억여원. 이는 성금 기탁자가 희망한 시점과 용도에 맞춰 사용하게 된다. 사용 시점을 명시하지 않은 소액 성금은 오씨가 희망한 ‘2020년 이후 장학사업’ 원칙에 따라 활용될 예정이다.

둘째는 재단 설립 당시 동아일보사가 내놓은 5억원과 독지가 권희종(權熙宗)씨가 희사한 토지 7400평을 바탕으로 조성된 기금이다. 동아일보 설립자인 고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선생과 각별했던 권씨는 땅을 팔아 재단운영기금으로 쓸 것을 당부했다. 현재 기금은 44억여원으로 불었고 매년 나오는 이자 3억여원은 불우청소년을 위한 장학금으로 쓰이고 있다.

최준철(崔俊喆)재단 이사는 “성금에는 국민의 갸륵한 정신이 녹아 있는 만큼 착실히 관리해서 좋은 곳에 써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기탁자 215명의 참사랑▼

동아꿈나무재단에 모여든 215명의 정성은 많게는 10여억원에서 적게는 2만원까지 다양하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기탁자는 11명. 자신을 숨기고 죽은 친척 등의 이름을 빌려 성금을 낸 경우도 많다.

단체 명의로 성금을 낸 경우는 12건이다. 이중 경성고 25∼28회 졸업생은 94년부터 4년 연속으로 한 학급씩 성금을 내기도 했다.

가장 많은 액수를 쾌척한 독지가는 재미교포 양삼영(梁三永·79)씨다. 30년대 동아일보 견습사원으로 일했던 양씨는 지난해 100만달러(약 11억원)의 성금을 기탁하며 “불우학생과 나환자 지원, 독도문제 연구기금으로 써달라”고 당부했다.

성금을 낸 횟수가 가장 많은 사람은 서울 관악구 복지후원회장인 김윤철(金潤哲·58)씨. 90년부터 105번에 걸쳐 총 1억6430만원을 기탁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80대 노인이 5000만원을 맡겨 왔다. 그는 “아홉살이나 어린 아내가 노후를 편히 지낼 수 있도록 모아둔 돈인데 넉달전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떴다. 소년소녀 가장을 돕고 싶다고 한 아내의 말이 생각났다”면서 아내 명의로 성금을 전했다.

지난해 4·13총선을 앞두고 정치판의 부정부패를 질타하는 신문광고를 냈던 ㈜재이손의 이영수(李永守·63)사장도 출마를 염두에 두고 모았던 5000만원을 총선 직전 성금으로 냈다. 이 사장은 “부패한 정치권에 몸을 담그기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낫겠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김준석기자>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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