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 "車 빨리 빼라' 부자가 폭행에 허위신고까지

  • 입력 2000년 10월 31일 18시 59분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얼굴을 맞으면서 조수석으로 넘어졌다가 핸들을 잡고 가까스로 일어날 때의 참담한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운전이 느리다’며 뒤따르던 고급 승용차 운전자 부자에게 폭행당하고 ‘음주 운전자’로 까지 신고된 지체장애인 김정일(金正日·33)씨. 지체장애 1급으로 하반신을 못쓰는 그는 사건이 일어난 지 3일이 지났지만 수모의 순간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김씨가 이 일을 당한 것은 지난달 28일 오후 6시10분경. 장애인용 오토차량을 몰고 자동차정비업소에 들렀다가 자신이 운영하는 형완독서실(경남 창원시 중동)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편도 2차로에서 막 좌회전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주차장 입구를 막고 선 지프를 빼달라고 수신호를 보내며 기다린 시간은 길어야 1분.

1㎞ 이전부터 경적을 울리며 뒤따라오던 그랜저 승용차에서 내린 K씨(47·건축업)가 운전석 창문 옆으로 다가와 “이 ○○, 차 빼”하며 삿대질을 해댔다.

김씨가 “주차하려고 하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으나 K씨는 다짜고짜 김씨의 멱살을 잡아 낚아채며 “○○, 육갑하네”라는 폭언과 함께 주먹으로 김씨의 얼굴을 때렸다. 김씨가 운전대를 잡고 일어나자 이번에는 K씨의 아들(19·대학생)이 다가와 욕설을 하며 다시 한번 주먹을 날렸고 김씨는 다시 조수석으로 넘어졌다.

주위에 사람이 몰려들자 K씨는 차를 몰고 황급히 사라졌고 김씨는 이들을 뒤쫓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순찰차가 다가와 김씨를 불러 세웠다. 김씨가 음주운전을 한다며 K씨가 112 신고를 했던 것. 황당하기 짝이 없었지만 결국 파출소에서 음주측정까지 해야 했다.

김씨의 진술을 들은 창원서부경찰서는 차적 조회를 통해 K씨 부자를 소환, 31일 폭력 등의 혐의로 긴급체포하고 K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키로 했다.

<창원〓강정훈기자>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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