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 死角 강남유흥가]업주들 무법…"가족몰살" 협박도

  • 입력 2000년 8월 6일 19시 17분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청 위생계 직원 16명 전원이 직무유기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사건은 유사한 사례가 전무하다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경찰은 불법영업 유흥업소들을 단속하고 감독해야 할 이들이 ‘봐주기식’ 단속으로 사실상 불법영업을 묵인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구청 직원들은 “단속 인력이 너무 부족하고 단속을 나가더라도 사법권이 없어 실질적인 효과를 얻기가 어렵다”며 역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데 단속기관만 모르고 있다’는 유흥업소들의 불법영업. 단속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기에 잡음이 끊이지 않는지, 단속 공무원과 업주들의 관계 및 단속 제도의 허실을 3회에 걸쳐 집중 점검한다.》

“어휴, 단속이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오늘 한 번 보세요.”

1일 오후 9시경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일대 유흥업소 단속을 나가기로 한 강남구청 위생과의 한 직원은 동행취재에 나선 기자에게 푸념부터 늘어놓았다.

이날 집중 단속 대상은 단란주점. 단란주점은 접대부를 고용할 수 없는 대신 유흥업소(룸살롱)에 비해 특별소비세가 20%가량 적게 부과된다. 이 때문에 업주들은 업소를 단란주점으로 등록한 뒤 몰래 접대부를 고용하는 편법을 주로 쓴다. 이날 단속은 바로 이런 변태영업 단란주점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오후 11시경 단속반은 한 단란주점에서 접대부 고용 현장을 잡을 수 있었다. 손님이 들어 있는 방 2곳 모두 남녀가 짝을 지어 앉아 있었고 남녀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나 보였다. 방안의 여성들은 그 차림새만으로도 한눈에 접대부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단속반이 들이닥치자 업소 전체는 마치 잘 훈련된 집단이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대응했다. 우선 업주는 단속반을 향해 “여자들은 평소 알고 지내던 동생들인데 자기네들 직장 동료들과 놀러 온 거다”라며 접대부 고용사실을 부인하며 시간을 끌었다.

그러는 동안 남자 손님들은 종업원의 안내를 받으며 주점 밖으로 빠져나갔다. 여자들이 접대부임을 증언해 줄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게 된 것.

“왜 손님들을 막지 않느냐”는 질문에 구청 직원은 “술을 마신 게 죄가 아닌 이상 나가는 손님들까지 제지할 권한이 없다”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증인들이 사라지자 업주는 본격적으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업주는 “술장사하는 게 죄라면 죄고, 우리도 먹고살아야 하는데…”라며 눈물을 글썽이다가 갑자기 “접대부를 고용했다는 증거를 대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짧은 스포츠 머리의 한 종업원은 험악한 표정으로 “에이, 뭐야 이거”라고 중얼거리면서 재떨이를 집었다 놓는 등 무언의 ‘협박’을 하기도 했다.

조사를 받게된 접대부들도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다는 듯 노련하게 대처해나갔다. 한 20대 여성은 “아저씨가 뭔데 우리를 붙잡고 있느냐. 공무원이면 다냐”며 오히려 단속반에 호통을 치기도 했다.

접대부 고용사실을 시인하는 진술서 작성 여부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기를 무려 1시간반, 구청직원은 기자에게 “증인들이 없는 상태에서 저렇게 버티면 단속이 불가능하다”며 철수를 제안했다.

이 직원은 “오늘 저 업주는 비교적 점잖은 편”이라며 “두달 전에는 업소 종업원이 콜라병을 던져 머리에 직통으로 맞을 뻔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구청의 또다른 직원은 단속 도중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다. 지난해 7월 강남구 신사동의 무면허 단란주점 단속 때 흥분한 종업원들이 구청 직원의 머리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여 죽이겠다”고 협박을 했다는 것. 이 직원은 “한달에 서너 차례씩 ‘가족을 몰살시켜버리겠다’는 협박을 받는다”고 말했다.

반면 단속반이 단속을 허술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달 30일 강남구 대치동 일대 단속에 나선 단속반은 한 치킨집에서 미성년자로 보이는 이들에게 맥주를 파는 장면이 목격됐는데도 단속을 하지 않았다.

그 음식점이 당일의 단속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인데 구청 직원은 “인력이 워낙 부족해 지정된 대상업소만 단속하는 것도 힘든 상태에서 다른 업소까지 신경 쓸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진행되는 서울시내 각 구청의 단속 실적은 통계상으로도 대단히 미미한 수준이다. 강남구의 경우 3월1일부터 단속을 벌인 단란주점은 모두 647개나 되지만 이중 불법 사실이 적발된 곳은 불과 35개뿐이다.

구청 직원들은 이에 대해 “단속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구청 단속반원에게 실질적인 사법권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강남구의 경우 룸살롱만 260곳과 단란주점 806곳 등 총 1066개의 허가된 유흥업소가 있는데 구청 단속직원은 단 2명뿐이라는 것. 또 불법 사실이 적발된 업주들이 발뺌을 해도 현장에서 연행을 하는 등의 사법적 재량권이 없는 것도 큰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시 위생과 김종박(金鍾博)과장은 “전문성을 가진 단속 요원들이 대거 확충돼야만 실질적인 단속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완배·최호원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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