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을 살리자(上)]파괴의 현장 르포

  • 입력 2000년 7월 23일 19시 22분


동아일보 기획취재팀이 동굴전문가 석동일(石東一)씨와 함께 살펴본 동굴들은 ‘신비의 비경(秘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올해 여름 휴가철에도 수많은 관람객들이 ‘자연 그대로’의 동굴을 보고자 동굴들을 찾겠지만 그 기대를 충족시킬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얘기다.

동굴 곳곳엔 이끼가 무성했고 대표적인 동굴생성물인 종유석(鍾乳石)과 석순(石筍) 등은 이런저런 이유로 잘려나가 밑둥만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야 할 유석(流石)엔 검은 먼지가 더께더께 쌓였고 보석처럼 투명한 물이 흘러야 할 림스톤(rim stone)과 림풀(rim pool)에는 땟국물 자국뿐이었다.

동굴생물들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몸에 좋다는 이유로 박쥐를 모조리 잡아가는 바람에 박쥐 배설물 중의 유기물질을 먹이로 삼는 갈르와벌레나 등줄굴노래기, 장님굴새우 등 동굴생물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고 살아남은 김띠노래기는 서식처를 이끼 숲으로 옮겼다.

▼청태현상▼

이끼가 가장 심한 동굴은 강원 영월군의 고씨굴. 74년5월 개장한 고씨굴은 통로든 동굴생성물이든 전등이 설치된 곳마다 이끼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황금색으로 빛나던 옥좌대(입구로부터 750m 지점)는 시커멓게 변색됐을 뿐 아니라 군데군데 이끼가 피어나 있었다. 이 이끼는 빛이 없는 자연상태의 동굴에서는 전혀 생기지 않는 것으로 개방동굴이 오염되어 가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식물.

강원 태백시의 용연동굴은 입구부터 이끼가 통로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청태에 관한 한 나머지 동굴들도 거의 똑같았다.

▼건화와 박리▼

건화(乾化)는 동굴 내부가 메말라가는 현상. 동굴이 건조해지면 종유석, 석순, 석주와 유석 등 석회동굴 생성물들의 생장이 멈춘다. 건화는 거의 모든 동굴에서 관찰된다.

나아가 동굴생성물의 표면이 메말라 떨어지는 박리(剝離)현상도 심각하다. 고씨굴의 경우 입구 100m 지점에 있는 대표적인 동굴생성물인 부동암은 겉 표면이 마치 일부러 떼어간 듯 떨어져나갔다.

성류굴은 내부가 건조해지자 동굴 내부에 물뿌리개를 설치했다. 그러나 이는 대증요법일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흑화현상▼

이는 유백색으로 빛나야 할 종유석 유석 석주 등 동굴생성물들의 색깔이 탁한 검은 빛깔로 변하는 현상. 거의 모든 동굴에서 발견됐다. 또 동굴생성물에 더께더께 앉은 검은 잿빛의 먼지들도 문제다. 이 밖에 종유석이나 석주에 관광객들의 손때가 묻어 검게 되는 경우도 있다.

▼동굴 훼손▼

청태 및 건화, 흑화현상이 개방동굴에서 나타나는 필연적 현상이라면 관람객이나 도굴꾼들에 의한 동굴 훼손은 전적으로 관리소홀의 결과다. 동굴 훼손이 가장 심한 곳은 용연굴. 종유석이나 석순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하도 볼거리가 없다 보니 태백시는 동굴안에 4개의 분수대와 인공폭포를 설치했다. 자연동굴이라기보다 ‘인공땅굴’이 되어버린 셈이다. 충북 단양읍의 노동굴은 도굴꾼들이 하도 많이 종유석, 석순 등을 떼어가는 바람에 시멘트로 석순과 종유석을 만들어 붙여놓았다. 성류굴 등도 정도의 차이뿐 비슷한 상태.

▼인공시설 및 관리 소홀▼

동굴의 훼손이 도굴꾼이나 관람객들에 의해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다. 돌탑, 분수대, 폭포 등 관리소측이 볼썽 사나운 인공시설물들을 설치한 곳도 많다. 용연굴 내부 광장엔 관리소측이 쌓아놓은 돌탑이 무려 200개가 넘고, 환선굴엔 볼거리가 없는 동굴벽면에 물펌프를 이용한 인공폭포가 설치돼 있다. 뿐만 아니다. 동굴 내부에는 페트병이나 껌, 담배꽁초 등이 허다하다. 노동굴에선 요구르트병과 쵸코파이 비닐포장지가 발견됐을 정도다. 고씨굴 관리사무소의 김형록(金炯錄·49)씨는 “관람객들이 동굴 안의 으슥한 곳에서 대소변을 보는 경우까지 있다”고 말했다.

▼동굴 생태계 파괴▼

개방 이전에 동굴에 사는 것으로 확인된 생물은 동굴 1개당 박쥐와 곤충, 거미, 지네, 노래기, 새우 등 보통 30∼50종 가량. 특히 갈르와벌레나 장님굴새우, 등줄굴노래기, 김띠노래기 등은 한국에서만 발견된 희귀종들이다. 그러나 이번 점검과정에서는 이런 생물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는 무엇보다도 동굴생물들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박쥐가 크게 줄었기 때문. 박쥐가 한 마리도 남지 않은 동굴도 많다. 관리소 직원들에 따르면 관람객이나 도굴꾼들이 한약재로 쓰이는 박쥐를 보이는대로 모두 잡아갔기 때문이라는 것.

환선굴에선 도룡뇽이 살아야 할 도룡룡소(沼)의 자갈을 모조리 모아 돌탑을 쌓는 바람에 도룡뇽이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지난해 문화재청이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동굴 서식생물들이 최고 50%까지 멸종했으며, 설사 멸종하지 않았다 해도 개체수가 절반 이상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자연보존에 대한 허위의식: 동굴은 한 사람이 들어가면 1인분만큼, 두 사람이 가면 2인분만큼 훼손된다. 그리고 동굴은 한번 망가지면 영원히 ‘과거 그대로’ 복원할 수 없다. 훼손된 동굴을 복원하는 것보다 현재 상태에서 더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관람객들도 자연과 있는 그대로의 환경을 아끼는 마음에서 동굴을 찾는 것은 좋지만 그 관람행위 자체가 ‘원형’의 훼손에 일조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동굴학자 원종관(元鍾寬·강원대)교수는 “모든 사람이 천연동굴을 관람하려 하는 이상 동굴은 망가질 수밖에 없다”며 “동굴보존을 위해서는 모형동굴이나 동굴박물관 등을 만들어 입굴객(入窟客) 수가 적정수준을 넘지 않도록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한에만 서식중인 동굴생물 70여종▼

석회동굴엔 특이한 생성물과 생물들이 많다. 특히 동굴은 폐쇄적이고 한 줄기 빛도 없기 때문에 신체구조가 육상동물과 다른 게 많다. 남한 지역에서 발견된 200여종의 동굴생물 가운데 70여종이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신종(新種)인 이유도 바로 이런 특유한 환경 때문이다.

▽유석(流石·flowstone)〓동굴벽에서 흘러내리는 지하수에 의해 생성되는 동굴생성물로 폭포가 흘러내리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림스톤(rimstone)과 림풀(rimpool)〓지하수가 느린 경사의 동굴바닥을 흘러내릴 때 마치 계단식 논과 같은 지형을 만드는데 논두렁에 해당하는 부분이 림스톤이고 림스톤에 싸여 물이 고인 부분이 림풀이다.

▽등줄굴노래기〓육상에는 없고 동굴에서만 발견되는 진동굴성(眞洞窟性) 생물. 우리나라 동굴생물의 대표종이다. 보통 40∼50mm로 43∼46마디이며 등 중앙에 큰 융기선이 있다.

▽김띠노래기〓눈이 없으며 유충일 때는 백색이나 성충이 되면 연한 적갈색을 띤다. 몸길이는 보통 20∼30mm로 몸통 마디수는 18개 정도다. 박쥐 배설물이 쌓인 곳에 많이

모여산다.

▽갈르와벌레〓갈르와벌레(사진)는 화석에서 확인되는 살아 있는 ‘화석곤충’이다. 겹눈이 퇴화된 것들이 많으며 보통 22∼38mm 크기로 46∼52개의 마디.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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