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 가신다" 양재IC 20여분 통제…출근길 큰불편

  • 입력 2000년 5월 25일 19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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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전 9시경 서울 서초구 양재동 경부고속도로에서 경찰이 대통령부인 이희호 여사가 탄 승용차의 통행을 위해 일반 차량들의 양재동 인터체인지 진입로를 막는 바람에 수백대의 차량이 고속도로 위에서 20분간이나 멈추어 서는 등 출근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이날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회사원 손모씨(36)는 뜻하지 않은 출근길 교통대란을 겪었다.

손씨가 분당에서 타고 오던 고속직행버스가 경부고속도로 양재톨게이트를 지나 오전 8시55분경 양재동 서초구청 앞으로 진입하는 지점에 이르러서 꼼짝을 하지 못했다.

버스는 멈춰선 지 5분이 넘어서도 움직일 줄을 몰랐다. 출근길의 버스와 승용차들이 뒤섞여 고속도로 위에서 끝없이 늘어섰고 기다림에 짜증난 일부 운전자들은 경적까지 울리고 있었다.

시간은 9시5분을 넘기고 있었으나 손씨가 탄 버스는 물론 주위의 차들도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급기야 버스 운전사는 “급하신 분들은 내려서 양재동까지 걸어서 가는 게 빠를 것 같다”고 말했고 승객들은 차에서 내려 고속도로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른 좌석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 역시 내려 고속도로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5분 정도 걸어서 서초구청 앞에 도착한 손씨는 더욱 기가 막혔다. 평소 오전에 출근 차량으로 붐비던 남부순환도로가 뻥 뚫려 있었기 때문. 남부순환도로를 이용해 사당동에서 양재동으로 오는 차들이 많아 고속도로에서 내려오는 차들이 막히는 줄 알았던 손씨로서는 정말 의외의 모습이었다.

한술 더 떠 고속도로에서 남부순환도로로 내려오는 승용차들을 위한 교통신호등을 통제하는 제어기 옆에는 순찰차가 서 있었고 교통경찰 한 명은 제어기를 잡고 있었다.

손씨와 함께 고속도로를 걸어온 일부 시민들은 순찰차로 몰려가 제어기를 잡고 있던 경찰관의 멱살을 잡고 “도대체 왜 신호등을 통제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으나 경찰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의문은 풀렸다. 시민들과 경찰관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고급 승용차 몇 대가 텅 빈 도로를 쏜살같이 달려갔기 때문이다. 이들 승용차 중 한 대에는 지방에 내려가기 위해 서울공항으로 가는 대통령부인 이희호 여사가 타고 있었다.

이여사 일행의 차량이 지나가자 순찰차와 경찰관은 철수했다. 하지만 고속도로와 남부순환도로 위에 뒤엉켜 멈춰서 있던 차량들이 모두 빠져나가는 데에는 20여분 이상이 더 소요돼야 했다.

이날 뜻하지 않은 교통대란을 겪었던 시민들은 “아무리 높은 사람이 지나간다고 해도 출근길 교통을 이 지경으로까지 만들어야 하느냐”고 분노에 섞인 목소리를 토해냈다.

한편 경찰은 “대통령부인 일행이 지나가기 10분 전인 오전 8시55분경부터 10여분간 교통통제를 한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고속도로에서 양재동으로 내려오는 차들을 10여분간 전면 통제한 것이 아니라 차량소통을 위해 남부순환도로를 이용해 사당동 방향에서 양재동으로 오는 차량들에게 더 많은 소통신호를 주다 보니 고속도로에서 내려오는 차들을 위한 소통신호가 짧아질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현두기자>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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