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도난 솔직히 신고, 양심적 고객들만 손해

  • 입력 2000년 5월 7일 19시 59분


주부 A씨는 실내수영장 사물함에 넣어둔 지갑 속의 신용카드를 도난당하자 곧바로 카드사인 B사에 알렸다. 그러나 B사는 “사물함 키를 투명한 가방에 넣어 탈의실 벽에 걸어둔 과실이 있다”며 부당청구 금액 300만원 중 일부를 내라고 청구했다. A씨는 금융감독원 산하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신청을 냈지만 조정위 역시 카드 소지자의 부분 책임을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회사원 C씨도 직원 숙소에서 잠을 자다 벽에 걸어둔 옷 속의 카드를 도난당했다. 곧바로 도난경위서를 냈지만 결국 부당청구액의 절반을 내야 했다. ‘카드분실 장소가 직원들의 왕래가 잦아 도난 우려가 있는데도 잠금장치를 설치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회원의 ‘선량한’ 관리의무〓현행 카드약관은 분실 도난신고를 접수한 시점을 기준으로 14일 이전부터 부당 사용된 금액은 카드사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관리 소홀이 인정되면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회원에게 부분 책임을 묻는다.

문제는 ‘선량’의 개념이 애매하고 카드사의 협상력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 금감원 관계자는 “A씨가 ‘카드를 소매치기 당했다’고 신고했다면 전혀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선량하게’ 상황을 털어놓는 바람에 불이익을 받았다는 얘기.

카드사는 조정 결정을 거부하고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을 시도하곤 하지만 회원들은 소송비용이 부당사용 금액을 대개 웃돌기 때문에 포기하기 쉽다.

▽금감원, ‘카드에 사진 넣자’〓금감원은 지난해 고객들의 피해사례가 빈발하자 카드 앞면에 사진과 본인 서명을 넣는 개선안을 여신전문기관협회에 권고했다. 그러나 카드사들은 ‘회원들이 싫어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카드사가 당장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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