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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4월 13일 19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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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18세로 전국 최고령자인 전남 화순군 화순읍의 김삼례 할머니가 13일 낮 12시경 손녀 김미라씨(41)의 도움을 받아 투표를 마쳤다.
1882년생인 김할머니는 당초 투표를 하지 않으려 했으나 손녀와 주위사람들의 권유로 이날 화순읍 일심리 청전아파트 안에 마련된 제7투표소에 나왔고 그가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는 순간 투표소 안의 주민들은 일제히 박수로 화답.
이날 전국에서는 김할머니 외에도 고령의 주민들이 ‘모범적’으로 투표에 참여해 관심.
부산 북구 구포1동에 사는 112세의 한기화 할머니는 오전 10시경 며느리와 함께 200여m를 걸어서 동사무소 2층에 마련된 투표소로 나왔는데 동사무소 직원 2명이 기다렸다가 업으려 하자 한할머니는 극구 사양하고 걸어서 계단을 오르는 노익장을 과시.
이 밖에 전북 전주시 중노송동의 이곡성 할머니(112), 경기 부천시 원미구 중4동의 양다학 할머니(111), 충북 영동군 매곡면 장척리의 김우범 할아버지(107) 등 ‘19세기에 태어난 노인’들도 당당하게 신성한 주권을 행사.
▼권희로씨 "진짜 한국인 됐네요"▼
○…재일 한국인을 멸시하는 일본 야쿠자를 살해한 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일본교도소에서 복역하다 지난해 석방된 권희로(權禧老·72)씨가 13일 오전 10시경 고국에서 첫 투표권을 행사.
권씨는 이날 아침 일찍 부산 동래구 거제동 자택을 떠나 인근 자비사에 머무르고 있는 후원자 박삼중(朴三中)스님과 함께 거학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투표.
투표를 마친 권씨는 “태어나서 처음 투표를 해봤는데 경륜이 높고 어려운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분을 찍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귀국한 뒤 호적을 되찾고 한국말을 다시 배우는 등 나름대로 노력해 왔지만 아직도 내가 제대로 한국인이 된 것인지 실감이 안날 때가 있다”면서 “그러나 이렇게 투표까지 하고 보니 ‘진짜 한국인’이 된 것 같아 감격스럽다”고 기뻐했다.
그는 자신이 수감되기 전까지 일본에서는 재일동포가 투표를 할 수 없었다며 칠순이 넘어 처음 하는 투표여서 어느 후보를 찍을지 많이 고심했다고 덧붙였다.
▼"정상회담 투표에 영향여부" 취재▼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설치된 압구정동 제1투표소 주변에 는 뉴욕타임스 도쿄특파원이 유권자들을 상대로 열띤 취재.
호워드 프렌치라고 자신을 밝힌 이 기자는 “정상회담 발표가 유권자들의 후보선택에 영향을 미쳤는지 취재하고 있다”며 “서민들이 사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과 부유층이 사는 압구정동 2군데를 골라 4, 5명의 유권자에게 이를 물어보고 있다”고 설명.
그는 또 “지역감정이 선거결과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취재 중”이라고 말해 한국의 선거양상에 대해 상당히 ‘연구’가 되어 있음을 내비치기도.
▼총선연대 지도부도 한표 행사▼
○…낙선운동을 주도했던 총선시민연대 박원순(朴元淳)상임집행위원장은 이날 오전 9시15분경 부인과 딸을 대동하고 서울 강남구 신사동 제4투표소가 마련된 현대고에서 신성한 한표를 행사.
박위원장은 “어느 정치학자의 말처럼 ‘투표소에서 나오는 순간 노예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유권자들이 선거가 끝난 뒤에도 국정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는 참여정신이 필요하다”며 “낙선운동을 벌인 지난 100여일이 엄청나게 길게 느껴지지만 이를 통해 국민이 정치의 주인으로 다시 서게 됐다고 자부한다”며 낙선운동을 마치는 소감을 피력.
총선연대 최열상임대표는 이보다 앞선 오전 8시 15분경 서울 강동구 길2동 제4투표구가 마련된 삼익아파트 노인정에 혼자 나와 한 표를 행사.
최대표는 “이번 총선은 정치권이 독점해온 정치문화가 시민들의 참여가 확대되는 쪽으로 바뀐 데 의미가 있다”며 ”낙선대상 정치인들이 이번 선거를 자성의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고 국민도 올바른 판단을 할 것으로 믿는다”고 유권자 혁명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
▼고교생들 투표장서 설문숙제▼
○…서울 강동구 둔촌1동 제2,3투표소가 차려진 서울 위례초등학교에는 이날 오전부터 고등학생들이 유권자를 상대로 정치의식 설문조사를 벌여 눈길.
이면훈군(18) 등 서울 동북고생 4명은 이날 오전 강동을의 이 투표소를 찾아 투표를 마치고 나온 시민들을 상대로 후보자 선택기준과 투표할 때 지역 혈연 성별을 고려했는지 등 9개 항으로 된 설문조사를 실시.
이군은 “이 일이 윤리과목의 과제여서 시작했는데 우리 나름대로 유권자들의 정치의식 수준을 평가해보고 싶었다”며 “이 설문지도 우리 스스로 만들었다”고 자랑.
<김상훈기자·부산〓권기태기자>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