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안 비호' 박처원씨 윗선 있나…고위간부 개입여부조사

  • 입력 1999년 11월 15일 20시 04분


‘고문기술자’ 이근안(李根安)전 경감은 경찰대공분야 최고책임자였던 박처원(朴處源·72·전 치안본부 5차장)전 치안감의 지시로 도피생활을 시작했으며 동료 경찰관들의 조직적인 비호를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85년 민청학련 의장이었던 김근태(金槿泰·현 국민회의 국회의원)씨에 대한 고문 역시 당시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장이던 박씨가 경기도경 대공분실 소속이던 이씨에게 수사팀에 합류토록 직접 지시해 이뤄진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지검 강력부(부장검사 문효남·文孝男)는 15일 이씨와 이씨의 부인, 동료 경찰관 등으로부터 이같은 진술을 확보하고 이날 박씨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했다.

검찰은 서울 자택에서 은신중이던 이씨가 97년12월 박씨로부터 생활비조로 1500만원을 받았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검찰은 박씨를 상대로 박씨 윗선의 고위간부 개입 여부, 이씨에게 도피를 지시하고 자금을 제공한 경위, 고문수사 지시 여부 등을 조사해 범인은닉 혐의 등으로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박씨가 직접 전화로 지시해 김근태씨 수사팀에 합류하게 됐으며 김씨를 전기고문 물고문했다’는 이씨의 진술이 확보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당시 이씨의 고문수사 지휘선상에 있던 경찰 고위간부와 안기부 관계자들도 고문수사와 도피에 개입했는지 조사키로 했다. 또 박씨가 이씨에게 준 100만원권 수표 1500만원의 자금출처도 추적하고 있다.

검찰은 뇌경색 고혈압 등으로 건강이 나쁜 박씨의 집으로 이날 오후 서울지검 강력부 김민재(金敏宰)검사를 보내 방문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이날 박씨의 개인금고 1개와 예금통장을 압수했다.

박씨는 이씨에게 도피하도록 지시한 혐의는 시인했으나 1500만원을 제공한 혐의와 고문을 지시한 혐의는 모두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88년 12월24일 경기 수원시 경기도경 대공분실 인근도로에서 당시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백남은(白南殷·64)전 경정 등과 함께 잠적중이던 이씨를 만나 “너마저 김근태씨 고문사건에 개입된 것으로 드러나면 곤란하다”며 도피를 지시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씨는 이같은 지시를 받고 박씨에게 “가족을 부탁한다”고 말한 뒤 부인에게서 도피자금 300만원을 받아 통일호열차를 타고 도피생활에 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는 95년5월 이씨의 부인으로부터 공소시효 만료 시점 등을 묻는 이씨의 편지를 받고 이씨의 건강상태를 묻는 등 은신중이던 이씨와 꾸준히 접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고 검찰은 밝혔다.

92년 가을에는 김수현 전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반장이 서울 용두동의 이씨 집으로 찾아가 숨어있던 이씨를 만난 사실도 드러났다.

〈부형권·박윤철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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