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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1월 9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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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서초경찰서에 붙잡힌 이모씨(40·서울 관악구 신림동) 등 3인조 금고털이범의 범행계획서는 수사관들을 놀라게 했다.
노트 2권짜리 이 계획서에는 서울시내 사무실 300여곳의 상세한 위치와 약도, 범행기술 등이 빼곡이 적혀 있었다.
‘양재전철역 근처 S은행 1,2층은 보안장치 설치돼 있음. 송파 신사거리 E노래방건물 2층 비어 있음.’
40여쪽 분량의 이 계획서에는 이렇게 사무실 위치와 폐쇄회로TV 및 보안장치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물론 각종 범죄수법들이 치밀하게 적혀 있었다. 보안장치 제거요령과 금고문 따는 기술은 물론 어떻게 하면 지문을 안 남길 수 있는가, 마취제와 독침은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등등.
‘고무풀로 손가락 코팅을 하면 지문이 남지 않는다. 비 오는 날을 이용해야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 기록은 모두 12년6개월간 교도소 생활을 했던 이씨가 ‘선배’들에게서 배운 기술들을 정리해둔 것.
이씨는 4월 서울구치소를 출소하자마자 이 교본을 바탕으로 현장 답사 등 일일이 확인작업을 거쳐 치밀한 범행계획서를 만들어 나갔다. 이씨는 이를 위해 교도소 동기인 김모씨(40) 등 공범 2명과 함께 낮에는 택배직원을 가장해 건물에 들어가 사전답사를 한 뒤 심야에 범행을 저질러 왔다.
심지어 사무실에 돈이 많은 날을 골라 범행을 하기 위해 각 상점과 사무실의 수금날짜까지 파악했으며 가명계좌까지 다량 확보해뒀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작성한 노트는 거의 논문수준에 가까울 정도”라며 “교도소 출소 직후부터 10월말까지 한달에 10여차례씩 범행을 저질러왔던 것으로 보이지만 범행전모를 밝히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