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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7월 7일 19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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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군청 이장덕계장은 안전기준에 어긋나서 인허가를 내줄 수 없다고 버텼던 모양이다. 당연한 그 일로 인해 부당하게 왕따를 당한 모양이다.
“왜 과장은 직원들 앞에서 서류를 내던지며 망신까지 줄까.”
허가권자는 군수인데 네가 뭔데, 정도의 협박은 무섭지 않았다. 다만 석연치 않았을 뿐이다.
그러면 뭐가 무서웠을까? 끝을 모르는 상관의 압력과 가족들을 몰살시키겠다는 협박이었던 것 같다. 씨랜드 대표와 험상궂게 생긴 젊은이 3명이 찾아와 “그냥 안두겠다, 애들하고 다 죽이겠다”고 했다니. 실제로 세 자녀를 큰댁으로 피신시키기도 했다. 결국 씨랜드측에 청소년수련시설 허가를 내주는데 사인을 했다. 경찰이 이계장을 불구속 입건한 이유다. 비망록도 없었다면? 분명히 직권남용으로 모든 죄를 몽땅 뒤집어썼을 준비된 희생양이었다. 그런데 그사람들은 누구를 믿고 그런 협박을 했을까?
“강과장이 불러 가보니 박재천이 내게 전달하라며… 5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네주었다. 받기 싫다고 했더니 받아서 직접 돌려주라고 했다. 박재천의 농협 계좌번호를 확인한 뒤 송금하였다… 굶어죽어도 그런 돈은 받고싶지 않다.”
이계장을 압박하면서 굶어죽어도 싫다는 사람에게 5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넸던 상사는 도대체 얼마를 받고 부하에게 무시까지 당해야 하는 그 치욕스러운 일을 자처했을까? 군수는 정말 “씨랜드 건물은 허가나지 않은 무허가건물”이라고 보고한 그 자리에서 “정상적으로 영업할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을까? 그렇다면 군수는 무엇을 받고 아이들의 안전을 판 것일까?
그이의 비망록에 남아있는 또 하나.
“월급날이다. 과장이 용돈을 만들어달라고 해 각 계(係)에서 10만원씩을 거둬 50만원 줘야 한다. 우리가 봉급타서 왜 과장 용돈 주나.”
이것은 화성군 사회복지과만의 문제였나, 곳곳에서 확인될 수 있는 뿌리깊은 상처인가?
부패의 중요한 사슬인 관료적 권위주의가 풀풀이 묻어난다. 시민 위에 공무원 있고 공무원 위에 권력 있는 그 이상한 체제. 터지는 사건은 많아도 책임을 지는 공무원은 없는 허공에 뜬 체제. 우리에게 희망은 없는가?
수백명의 아이들에게 평생 지우기 힘든 기억을 남긴 채 23명의 어린이를 무참히도 잡아간 그 화재 현장에서 안된다며, 아이들이 가면 안된다며 아이들과 함께 가버린 그 남자. 온갖 부패의 악취로 중독되어 있는 땅에서도 삶이란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거라는 사실을 죽음으로 입증한 그 남자. 그리고 굶어죽어도 구린 돈은 받지 않는 그 여자. 왜 우리는 풀꽃같은 희망을 짓밟는가? 왜 우리는 희망을 가둬놓고 살게 되었는가?
이번 사건이 묘한 것은 법의 기준은 모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아직도 공무원들이 너무 많은 힘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인허가 사항에 대한 규정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적격자인 경우는 누구나 허가받을 수 있도록, 비적격자가 인허가를 받을 경우는 누구나 고발할 수 있도록. 그러면 이계장 같은 이가 밀실에서 누른다고 눌리겠는가? 당연한 거지만 밀실이 강하면 시민권이 약해진다.
이주향<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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