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자녀초청 캠프…『아빠와 함께라 너무 좋아요』

  • 입력 1999년 1월 24일 19시 50분


23일 오전 과천 서울랜드 눈썰매장. 아버지와 한몸이 돼 뒹굴며 깔깔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겨울 햇살을 뚫고 공원 가득 울려 퍼진다.

이날은 사랑의전화 복지재단에서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실직노숙자 7명의 자녀들을 초청해 따뜻한 부정(父情)을 느낄 수 있도록 준비한 2박3일 겨울캠프의 둘째 날.

너무 오랜만에 만난 탓인지 전날까지만 해도 서먹서먹하던 아이들은 눈썰매를 함께 탄 아버지의 넓은 등판을 꼭 껴안으며 얼굴을 마구 비벼댔다.

전남 해남에서 온 상석(15) 상진(12)형제에게는 아버지의 체온이 더욱 남달랐다. 10년전 어머니를 사별한 뒤 할아버지댁에서 자란 두 형제는 그나마 한두달에 한번씩은 볼 수 있었던 아버지 얼굴을 3년째 못봤기 때문이다.

캠프 기간내내 별 말이 없던 3부자는 결국 캠프 마지막날인 24일 오후 헤어지면서 꼭 부둥켜안고 떨어질 줄을 몰랐다.

“공부 열심히 하거라. 아버지가 꼭 돈을 벌어 내려갈테니 할아버지 할머니 말씀도 잘 듣고….”

초등학교 6학년인 정은이(13)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는 “아빠 사랑해요”라는 글귀가 가득 적혀 있었다.

자녀들을 배웅하며 학용품비에 보태라며 공공근로사업을 통해 모은 돈을 건네주던 아버지들의 쑥스러운 손길. 그러나 그 체온속에는 이 세마디가 담겨있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꼭 돌아가마.”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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