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기습폭우현장]사방이 황토물…보은읍 「육지속 섬」

  • 입력 1998년 8월 12일 19시 18분


“이번에 우리는 그냥 지나가나 했는데….”

12일 새벽부터 미친듯 쏟아진 집중폭우로 집과 논밭 등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충북 보은군 보은읍 주민들은 넋을 잃은채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이날 오전 11시경 보은읍 보청천 상류의 항건천 물줄기는 제방을 무너뜨려 장신리마을 2백여가구를 삼킨뒤 그것도 모자란듯 혀를 계속 날름거렸다. 이날 새벽 잠옷바람으로 인근 보은군 체육관으로 몸을 피했다 집으로 돌아온 5천여 주민들도 가재도구를 챙길 기력조차 잃은 듯했다.

외부와 연락을 취하려 하지만 전화는 여전히 먹통.

보은읍 이평교 부근의 농경지도 온통 황토색 비닐로 덮은듯 건강하게 자라던 벼는 온데 간데 없었다.

농민 조성구씨(48)는 “2㏊의 논이 모두 잠겨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 학비는 커녕 먹을거리도 건지지 못하게 됐다”며 울먹였다.

보은읍에서 15㎞ 떨어진 마로면 탄부면 외속리면도 고립무원의 상황에 빠져 있다.

마로면 가대리 주민 40여명은 물속에 고립된채 이날 오전 9시경 경찰항공대의 구조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뒤 발을 동동구르고 있다는 얘기가 보은군청 상황실로 전해져 왔다.보은군 관계자는 “마로면 등지는 연락이 두절되고 도로마저 끊겨 어떤 상황인지 파악조차 안된다”며 답답해 했다.

또 보은과 상주 속리산 옥천 영동을 연결하는 4개의 국도도 유실돼 보은읍은 ‘육지속의 섬’으로 변했다.

주민들은 1백여명의 사망자를 낸 80년 보은대홍수의 악몽을 떠올리며 그때의 교훈을 살려 사전에 대비하지 못하고 또다시 똑같은 수재를 당한데 대해 당국에 분노하고 있었다.

〈보은〓지명훈기자〉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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