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권재현/『미선아, 꼭 일어나야 해』

  • 입력 1998년 6월 30일 20시 01분


“실은 첫 모금을 하던 날 전 한푼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IMF체제까지 겹쳐 제 삶엔 남이 끼여들 틈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백혈병에 걸린 예일여고 2학년10반 신미선(申美善·17)양을 돕기위해 전교생들과 교사들이 모은 성금전달식이 있던 30일.

미선이의 아버지 신정철(申貞澈·44)씨는 미선이를 돕기 위해 백일장에서 탄 상금 15만원을 한꺼번에 기탁한 이름모를 여학생의 편지에 목이 메었다.

“그러고보니 ‘가난’이란 허울 아래에서 전 남을 도와준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이 돈으로 여름신발과 안경을 사라고 모두 주셨을 때 비로소 제가 왜 이 상금을 받게 됐는지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학생은 미선이의 담임교사 책상에 아무도 모르게 돈봉투와 편지를 두고 나왔다.

미선이는 올해 2월까지만 해도 건강하고 밝은 학생이었다. 사업에 실패한 신씨에게 우스갯소리로 위로도 하고 분식점 종업원으로 일하는 어머니를 위해 집안일도 잘 거드는 착한 막내딸이었다.

목감기를 심하게 앓는 것 같았지만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아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새학기가 시작된 지 며칠만에 결국 쓰러졌다. 급성 임파구성 백혈병이었다.

미선이의 오빠에게서 골수이식을 받을 수 있기는 했지만 수술비와 병원비를 합쳐 1억원을 마련할 길이 막막했다.

그런 그에게 미선이의 학교친구들과 교사들이 열흘만에 2천5백여만원이나 되는 돈을 모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금까지 그저 저 하나, 우리 식구만 생각하고 살아왔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마음씨 고운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으니까요.”

신씨는 학생들 앞에서 자꾸만 눈가를 훔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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