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속 학문 양극화 뚜렷…「돈벌이」관심 기초분야 외면

  • 입력 1998년 4월 7일 19시 20분


지식산업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지적 인프라 (Infra·기반)’가 무너진다는 소리가 높다.

IMF경제난이 지속되면서 대학생들은 취업준비에만 매달리고 순수학문은 뒷전이다. 작가와 학자들의 창작활동이 위축되고 출판업계는 사상 초유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기업들의 각종 연구개발비도 줄어 국가 경쟁력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가 늘고 있다.

대학가의 순수학문 폐강이 잇따르고 있다. 취업에 유리한 영어와 경영학 등 실용학문에만 학생이 몰린다. S대의 경우 학기시작전 선(先)수강신청결과 총60과목을 폐지했다. 이중 인문 사회대가 18과목으로 가장 많았고 법대는 1과목 경상대는 9과목이었다. 폐강된 16과목은 ‘셰익스피어’ ‘한국근현대사특강’ 등 문학 사학 철학 등 인문학분야가 대부분.

경영학과의 ‘의사결정론’과 ‘경영학원론’에는 각각 2백35명과 2백17명이 몰려 인기 순위 2, 4위를 기록했으나 독어학개론과 기계공학실험 등은 5명에 불과했다.

96년부터 학부제를 실시한 Y대의 경우 올해 학과선택에서 경영학과에는 2백40명이 몰린 반면 학부제실시전 60명 정원이었던 응용통계학과는 2명(복수전공 11명), 60명이었던 천문대기과학과는 5명만이 지원했다.

학생들이 고시준비에만 매달리는 것도 문제. 학생들은 전공에 상관없이 고시준비에 매달리고 있고 ‘꽤 괜찮은’직장에 취직했던 졸업생들도 고시촌으로 몰려들고 있다.

고려대 사회학과 박길성(朴吉聲)교수는 “대학내의 과목선택에서도 취업 잘되는 쪽과 안되는 쪽의 양극화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학생들이 한쪽에만 몰리면 우수두뇌의 배분이 불균형을 이루고 기초과학 순수학문을 바탕으로한 지적 활력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와 학자들도 위축되기는 마찬가지.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올해 1∼3월 출판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전체발행부수가 8.4%가 떨어졌으며 권당 평균 발행부수는 21.9%나 감소했다. 문학 예술 사회과학은 물론 순수과학과 기술과학서적도 모두 감소했으며 서점의 부도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3월까지 대형서적도매상 25개가 부도를 냈다. 이중 15개가 지난해 11월 IMF이후 무너졌다. 마케팅관련 저서를 내려던 성균관대 유모교수는 “출판계가 어려워 저서를 내기가 힘들어졌다”고 걱정했다.

대기업들도 연구개발 투자비를 급격히 줄이고 있다. 한국기계공업진흥회에 따르면 올해 일반산업기계의 연구개발투자비율은 지난해 매출액대비 1.4%에서 1.0%로 떨어질 전망. 철강협회도 매출액대비 0.9%에서 0.88%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필상(李弼商)기업경영연구소장은 “경제위기로 국내지식개발과 창의력 빈곤이 가속화될 것이 우려된다”며 “사회전반적으로 이같은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당장의 경제위기가 극복된 뒤에도 국제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원홍·권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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