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정치 뺨치는 中高 회장선거…공약 난무-학연주의 조장

  • 입력 1997년 11월 29일 20시 12분


공약 남발이나 연고주의 강조 등 기성 정치판의 잘못된 선거관행이 최근 학생회장 선거를 치르고 있는 중고교에서도 답습되고 있다.

11일 학생회장 선거를 치른 서울 D상고. 모두 3명이 나선 선거에서 기호 1번 학생이 냉난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별관 교실에 벽면부착용 가스난로를 놓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하지만 이 학교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내년에 받게 될 학교시설보수 지원금은 이미 학교 본관에만 사용토록 결정돼 있어 당선학생이 밝힌 공약은 실현이 불가능한 것.

지난 주 학생회장 선거를 마친 서울 C고교도 비슷한 경우.

한 학생이 현재의 좁은 학교운동장을 넓게 사용하기 위해 운동장에 지붕을 덮어 1,2층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다른 학생은 한술 더떠 서향(西向)인 고등학교 건물과 남향인 초등학교 건물을 맞바꾸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달 초 선거가 있었던 서울 D고와 S여중도 후보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을 넓히겠다」 「남녀공학을 만들겠다」는 등 허무맹랑한 공약을 잇달아 내놔 교사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더욱 큰 문제는 애초부터 후보학생이나 일반학생 모두 공약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는 것.

서울 B고 윤모군(16)은 『이달 초 학생회장에 출마한 선배들이 「학교내에 공중전화기수를 늘리겠다. 매점 식단을 개선하겠다」는 등의 공약을 제시했지만 솔직히 실현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당한 공약 못지않게 교사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후보학생들이 경쟁적으로 부추기고 있는 학연(學緣)주의.

이달 초 선거를 치른 서울 W고교의 경우 서로 출신중학교가 다른 두 후보학생이 『같은 중학교 출신끼리 뭉쳐야 한다』고 강조하는 바람에 선거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학생들간에 반목이 계속되는 후유증을 겪었다.

〈이현두·김경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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