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오선생 10주기를 맞아]갈수록 빛나는 巨人의 생애

  • 입력 1997년 8월 29일 20시 23분


玄民 兪鎭午(현민 유진오)선생이 세상을 떠나신지 어언 10년이 흘렀다. 오늘 선생의 10주기를 맞아 고인의 높으신 지성과 거인다운 생애를 다시금 추모하게 된다. 서구법률학을 이 땅에 수용한 선각적 개화지식인의 가정에서 나신 선생은 가학(家學)이 된 법률학, 특히 헌법학을 연찬해 우리나라 헌법학의 태두가 되셨다. 해방후 건국도상에 선생은 손수 헌법초안을 기초해 국기(國基)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 역사적 위업을 이루셨다. 그 헌법초안에 바이마르헌법을 본받은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가미한 것도 선생의 탁월한 식견을 말해준다. 선생의 본령은 역시 학문이요 교육이었다. 일제시대부터 仁村 金性洙(인촌 김성수)선생을 도와 보성전문에서 법학교육에 힘쓰시며 인재양성에 헌신하셨고, 해방후 대학으로 승격된 고려대학교를 세계에 통용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초석을 놓으셨다. 개교 50주년을 계기로 선생은 총장으로서 「자유 정의 진리」의 고대교육이념을 제정하셨고 이는 우리나라 대학의 보편적 이념이 됐다. 그분의 마음의 고향은 언제나 고대였다. 고대의 토템상징은 호랑이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민족교육의 메카를 자처하는 고대는 호랑이의 민족지성을 기르는 곳이라해서 선생은 「養虎記」(양호기)를 써서 고대사랑의 징표로 남기셨다. 선생은 해방후 문교정책의 추진에서도 주역이 되셨다. 특히 사학(私學)의 교육권을 창달, 사립과 국립의 조화를 이루고 한국의 대학상을 조형하는데 선각자적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다. 전인적(全人的)인격을 갖춘 다재다능한 수재셨던 선생은 한때 동반작가로서 문학사에 남을 소설도 쓰셨다. 그분의 명쾌하고 미려한 글은 많은 독자의 가슴에 남아있는 명문장으로 각급학교 교과서에도 채택됐다. 만년에는 야당당수로서 반독재민주화의 투쟁에 뛰어들어 대통령과 여당을 규탄하는 사자후를 토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나 정치는 그분의 본령이 아니었다. 현민선생의 10주기를 맞아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으로서 그분이 지니셨던 선비적 인품과 심오한 학식, 그리고 따뜻한 인간미가 그리워진다. 신일철〈고려대 명예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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