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申采浩(신채호)선생 후손들 사이에 적자(嫡子)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신채호선생의 외아들인 신수범씨가 원호적 이외에 한국전쟁 직후 실향민을 위해 정부가 임의로 만들어준 가호적(假戶籍)을 동시에 갖고 있었던 것이 적자논쟁의 발단.
부인과 1남3녀를 북에 남겨두고 월남한 신수범씨는 전쟁이 끝난 뒤 조모씨와 동거생활을 거쳐 지난 61년 결혼했다. 이때 당시 14세였던 황모군이 「신OO」이라는 이름으로 신씨의 가호적에 올라갔다. 이에 대해 신OO씨는 조씨가 데려온 아들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신OO씨 본인은 『신수범씨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신채호선생의 장손이었지만 당시 외할머니가 부모님의 결혼을 반대해 사생아가 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69년 말 조씨와 헤어진 신수범씨는 세번째 부인 이모씨와 재혼, 1남1녀를 두었으며 75년 원호적에 혼인신고를 했다.
그러나 91년 신수범씨가 세상을 떠나자 「신OO」씨는 가호적을 근거로 자신이 『신채호선생의 장손(長孫)』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신수범씨의 셋째부인 이씨의 아들이 법원에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소송」을 내면서 문제가 표면화했다.
94년 1심에서는 신OO씨가 『친생자가 아니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96년 8월 항소심과 지난달 11일의 대법원 상고심에서는 『신OO씨는 신수범씨의 친생자는 아니지만 양친자관계는 성립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친생자로 출생신고를 했다는 것은 피고를 입양하려는 의사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입양의 실질적인 요건을 갖추었다』며 『친생자관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양친자관계는 성립됐다』고 밝혔다.
이같은 판결에 대해 양쪽 모두 승복하지 않고 있다. 우선 신OO씨는 『나를 양자로 결정한 대법원 판결은 잘못된 것』이라며 친자확인을 위한 재심청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씨부인의 아들 역시 『신OO씨는 자신의 출생 당시 이름인 황OO를 지난 81년 호적상 사망처리하고 신채호선생의 장손으로 행동해 왔기 때문에 「가짜 적자」』라고 주장하고 있어 적자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조원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