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부패와 갈등이 가득한 오늘의 나라 상황을 보세요. 6월항쟁은 결국 실패하고 만 것 같아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로 朴鍾哲(박종철)군의 고문치사사건 발생 4개월후인 87년5월18일 명동성당에서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이 조작됐다」고 폭로하는 등 독재정권에 맞섰던 金勝勳(김승훈·58)신부.
「구속과 죽음」을 각오하고 6월항쟁을 이끈 대표적인 인사인 그가 6월항쟁을 「실패」라고 평가하는데는 수많은 시민 학생들이 피땀으로 이룩한 성과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
『90년 3당합당으로 민주주의 정신이 깨졌고 시민재야단체도 몇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뿔뿔이 흩어졌지요. 문민정부는 6월항쟁이 마치 자신들의 작품인 것처럼 행세합니다. 그러나 6월항쟁의 주인은누가 뭐래도학생 시민입니다』
당시 평화시위를 주도하고 국민의 정신적 버팀목이었던 사제단의 힘의 원천에 대해 그는 金壽煥(김수환)추기경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6월항쟁 초기에 온국민의 관심이 쏠렸던 명동성당 농성기간 때였습니다. 경찰의 성당진입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추기경께서는 사제들에게 「온몸으로 학생들을 보호하라」고 말씀하셨지요. 그후 사제들은 정의를 위해 몸과 마음을 던졌습니다』
유신독재시절인 76년 사제단을 창립한 이래 20여년간 사회정의의 외길을 걸어온 그는 지난 95년12월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를 설립, 사회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윤종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