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철씨 기소]수사마친 검사들 『국민이 불쌍하다』 허탈

  • 입력 1997년 6월 5일 20시 06분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아들을 비리혐의로 구속기소함으로써 추락했던 검찰의 위상을 조금이나마 바로 세웠다는 평가를 받은 대검 중수부 검사들의 소감은 의외였다. 이들은 「정말 열심히 했다」는 등의 자화자찬보다는 『우리나라가 이정도밖에 안되는가』 『국민이 불쌍하다』는 식의 한탄섞인 소감을 털어놓았다. 한 수사검사는 『여러 은행장과 정치인 기업인들을 수사하면서 우리나라에도 법과 규율이 있건만 몇몇 권력자들에 의해 사회전체가 이렇게 힘없이 무너질 수 있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뇌물을 제공한 이유를 묻는 검사의 질문에 대부분의 기업인들은 『그정도 실력자에게 돈을 줄 수 있는 것도 행운이었다. 법보다는 권력자가 더 믿을만 한 것이 우리나라』라며 오히려 수사검사의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식이었다는 것. 소위 지도층이라는 인물들의 수사받는 태도는 수사검사들을 더욱 한심한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고 한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회지도층은 검찰조사에서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오히려 정반대였다는 것. 한 수사검사는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자신만 살겠다며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만 하는 바람에 의원들끼리 대질신문을 하고 또 그자리에서 싸우는 꼴불견을 연출한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게다가 뇌물을 준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은 몇몇 기업인은 수사검사들에게까지 「수억원의 수사자금제공」을 제의하며 무혐의처리를 부탁해 검사들이 혀를 내두르게 했다. 또 현철씨 비자금 수사가 강도높게 진행되면서 현철씨에게 돈을 제공한 기업 명단이 루머형식으로 돌아다니자 몇몇 기업인은 중수부로 전화를 걸어 『수사자금 부족으로 대검중수부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도를 봤다』며 『수억원을 기부할테니 수사대상에서 제외시켜달라』고 요청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는 것. 한 수사검사는 『수사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현주소가 이정도구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며 『수사도 수사지만 좋은 인생공부를 한 것같다』고 씁쓸해했다. 〈조원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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