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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7년 6월 3일 20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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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1시15분부터 2시간여동안 유상경의 부검을 집도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姜信夢(강신몽)법의학부장은 『정확한 사인은 현장검증과 차량조사를 더 해봐야 알 수 있으나 일단 폭행에 의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차량의 충격에 의한 사고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강부장은 『유상경의 오른쪽 골반뼈가 깊이 내려앉고 그 충격으로 간이 세 도막이 났으며 이때 출혈한 피와 간 주위의 대정맥이 파열되면서 생긴 피 9백g 가량이 심장 폐 위 등에 고여 있었다』고 설명했다.강부장은 『머리 부위와 오른쪽 귀밑 부분에서 약간의 출혈 흔적이 발견됐으나 이는 가벼운 타박상에 따른 출혈로 뇌출혈은 아니며 심장에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번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검찰은 이에 따라 일단 학생들의 폭력에 의한 사망은 아닌 것으로 보고 빠른 시일내에 현장검증과 차량조사를 실시, 다음주쯤 정확한 조사결과를 발표키로 했다.
경찰도 사고 당시 시위현장에 있었던 동료 전경들을 불러 조사한 결과 유상경이 가스차에 치여 숨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동료 전경들은 경찰조사에서 『4천여명의 학생들과 대치중이던 6개중대 7백여명의 경찰이 한꺼번에 후퇴하는 과정에서 성동교 중간지점에서 대원 5, 6명이 후진하던 가스차에 치였으며 유상경이 바퀴와 차체 사이에 끼였다』고 말했다.
유상경이 가스차에 치여 사망한 것으로 최종확인이 되더라도 가스차에는 백미러가 없어 가스차 운전자를 처벌할 수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서울대와 한양대에 5천여명이 모여 있는 가운데 한총련측은 『4일 전국 각대학에서 유상경의 추도식을 치른 뒤 중앙상임위원회를 열어 출범식 강행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양대는 이날 오전 비상 전체교수회의를 열고 한총련이 한양대에서 출범식을 강행할 경우 휴교조치를 비롯한 가능한 모든 대책을 강구키로 했다.
〈이철용·박정훈·이명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