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병든 핏덩이를 버린 부모

  • 입력 1997년 5월 13일 20시 33분


서울대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정영수」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는 병상에는 벌써 6개월째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병상에 외롭게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정군이 이곳에 입원한 것은 태어난지 이틀만인 지난해 8월3일. 진단결과는 완치가 불가능한 뇌종양이었다. 입원후 3개월째까지만 해도 정군의 병실은 다른 병실과 다름없이 부모들이 24시간 상주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초 병원측이 정군을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기라는 통보를 한뒤 정군의 부모가 갑자기 병원에 발을 끊어 정군은 졸지에 고아 아닌 고아 신세가 돼버렸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정군을 병원에 버렸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한 병원측의 기대와는 달리 정군의 부모는 이후 2개월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기다리다 지친 병원측은 지난 1월6일 입원서류에 적혀있는 충남 공주시의 정군 부모집으로 직접 직원을 보냈으나 정군의 부모는 이미 집을 비운 상태였다. 이웃들에 따르면 정군의 부모가 지난해 말 이혼한 뒤 부부 모두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는 것. 지난달 3일 마지막으로 정군의 퇴원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우편으로 보낸 병원측은 끝내 정군의 부모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자 지난달 14일 서울 동대문경찰서에 정군의 부모를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병원측은 『아무리 형편이 어렵더라도 어떻게 부모가 병든 자식을 버릴 수 있느냐』며 『정군의 경우 숫제 부모가 없었더라면 국가가 모든 치료비를 부담하는 의료보호 혜택이라도 받을 수 있을 텐데…』라며 혀를 찼다. 〈이현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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