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최복희/딸아이의 노란 민들레꽃

  • 입력 1997년 5월 3일 09시 20분


나는 노란 민들레꽃을 좋아한다. 들길을 걷다가 노란 민들레 꽃송이를 보면 알에서 갓 깨어난 병아리같고 초록빛 둑길에서 방긋 웃음을 보내는 민들레꽃은 천진스러운 아기의 얼굴 같아 손으로 쓰다듬어 보게 된다. 작년 봄 민들레 몇 포기를 캐다가 마당 가장자리에 심었는데 꽃을 피우고 꽃씨가 흩어져 올 봄에는 마당 전체가 민들레밭이 되었다. 마당에 서서 지난날 어린 딸에게 노란 민들레꽃을 받아들고 감격했던 생각에 젖어 본다. 신혼 때부터 농촌생활에 서툴던 나는 시어머니의 꾸중을 습관처럼 듣고 살았다. 결혼생활 7,8년째까지 경제권이 없어 돈 한푼 내 스스로 써보지 못하던 때 딸아이는 어느새 자라 초등학교 입학을 했다. 어버이날 전날이었다. 나는 3백원을 구해 등교하는 딸에게 주며 카네이션 세 송이를 사 내일 아침 할머니 아빠 엄마 가슴에 달아 드리라고 일렀다. 딸애의 교육도 되려니와 막내며느리인 나를 꽤나 마뜩찮게 여기시는 시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고도 싶었다. 그날 딸의 하교시간이 다가오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비록 시켜서 하는 일이지만 아이에게 꽃을 받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레었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빨래를 하는데 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딸애는 살금살금 뒤로 다가와 『엄마』하고 등에 업혔다. 나는 반사적으로 『꽃 샀니』하고 물었다. 딸에는 대답은 않고 눈만 마주치다가 『할머니 꽃만 샀어』하는 것이었다. 이유인 즉 꽃 한 송이에 2백원이라고 했다. 나는 학부모가 되도록 시장에 한번 나가지 못하여 세상물정을 몰라 결혼 전 친정부모님께 사다드린 꽃값만을 생각했던 것이다. 딸은 꽃 한 송이 사고 남은 돈 1백원을 내게 주며 다른 한손에 들려있는 노란 민들레꽃을 내밀었다. 돈이 모자라 아빠 엄마꽃을 못산 대신 하교길에 민들레꽃을 따왔다고 했다. 나는 『착하다』 칭찬 한마디 해주고 감격하여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고 돌아서서 하늘만 쳐다보았다. 어린 딸의 맑고 고운 마음씨와 예쁜 행동에 온갖 시름이 다 가시는 듯했다. 노란 민들레꽃이 가득 피어있는 마당을 거닐며 나만이 간직하고 있었던 그날의 감격과 그때 내 눈물의 의미를 이제는 대학생이 된 딸에게 들려주고 싶다. 딸애도 노란 민들레꽃처럼 언제나 해맑은 모습을 간직했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최복희(경기 구리시 갈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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