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탄광 붕괴]매몰광원 자녀들 『아빠 살아만 계세요』

  • 입력 1996년 12월 13일 19시 36분


『아빠, 제발 살아만 계세요. 대학 안가고 공무원시험 봐서 편히 모실게요』 13일 오전 강원 태백시 연화동 한보에너지 통보광업소 북부사갱 입구.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매몰광원 11명 가운데 한사람인 黃炳燾(황병도·44)씨의 딸 혜정양(18·장성여고 3년)이 눈물을 머금고 기도하듯 말했다. 올해 수능시험을 치르고 「멋진 여대생」을 꿈꾸던 혜정양은 지난 11일 오후1시경 아버지 황씨의 사고소식을 듣고 『아빠가 나의 대학진학을 위해 다시 광산으로 들어가시더니…』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13년 가까이 근무하던 광산을 떠나 서울 부산 등을 돌아다니며 3년 넘게 막일을 하던 황씨가 다시 광산일을 시작한 것은 지난 3월. 집안형편 때문에 대학을 포기했던 아들 在鈺(재옥·21)씨를 설득해 지난해 전문대에 진학시킨 뒤 혜정양이 고3이 되자 일이 험하고 월급도 많지 않지만 자녀 학자금을 지원해주는 광산일을 다시 시작한 것. 황씨를 포함해 대부분의 광원들이 월급 1백만∼1백50만원에 목숨까지 담보로 맡겨야 하는 광산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자녀 2명에 대해 대학까지 학자금을 지원해주기 때문. 군복무중 아버지 李容三(이용삼·45)씨의 사고소식을 듣고 달려온 泰京(태경·20·한림대 1년 휴학)씨도 『아버지께서 제가 대학에 입학한 지난해 다시 광산일을 시작하셨다』며 『그때 말렸어야 했는데…』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동료 광원들은 『자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탄광으로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한 아버지들과 그 아버지를 편하게 모시기 위해 돈을 벌겠다는 자식들의 마음이 하늘을 감복시켜 「기적」을 만들어내길 빌 뿐』이라고 말했다. 〈태백〓慶仁秀·夫亨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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