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족을 이끌고 북한을 탈출, 한국에 온 金慶鎬(김경호·61)씨의 맏형 慶太(경태·70)씨는 10일에도 전날 「형제상봉」의 감격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경태씨는 공항에서 동생을 만난 뒤 제수인 경기의왕의김원순씨 집에서하룻밤을보냈다.
5개의 방을 가득 채운 일가 친척들과 오랜만에 모여 얘기꽃을 피우면서도 『물어볼 게 그렇게도 많았는데…. 손한번 잡아보고 말았어요』라며 아쉬워했다. 「잃어버린 50년」을 되살리기에는 너무도 짧았던 순간이었다.
『얼굴을 보니 첫눈에 경호인줄 알겠더라구. 걔 손자들도 우리 인선이(손자)와도 똑 닮았더구먼』
경태씨는 오전 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으나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잠이 들면 잠깐 봤던 동생의 얼굴을 잊어버릴까봐, 아니면 동생과 함께 할 「앞날」을 머릿속으로 숱하게 그려보느라 그랬을까.
『정순아, 조금만 더 있다 갈 것이지. 네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동생이 왔는데…』
경태씨는 갑자기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여동생 정순이와 그보다 앞서 간 경백 경희 등 세 동생의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꼈다고 말했다.
『세동생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맏형인 나혼자만 외롭게 남았는데 말년에 큰 선물을 받은 게지』
경태씨는 그러나 동생이 중풍기로 다리를 절었던 것이 적이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얼굴도 많이 상하고 오른손 검지손가락의 한마디가 잘려 있던데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얘가 남한 생활에 잘 적응할지 걱정이 돼요』
경태씨는 『이제는 맏형 노릇 한번 해야 할 텐데…』라면서도 단칸방에 살고 있는 자신의 형편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듯 했다.
〈李明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