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일가 탈출/최철호씨 인터뷰]『누님 구하러 신속결행』

  • 입력 1996년 12월 6일 19시 57분


일가족 17명의 집단 탈북(脫北)을 실질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한 최철호씨(최현실씨의 동생·뉴욕 거주)는 본보 특파원과의 전화통화에서 『누님가족들이 「한마을에서 수십명씩 굶어죽고 있는데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고 호소해와 일을 신속히 처리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특히 최씨는 『아버지는 여든이 멀지 않으신데다 최근 두차례나 심장수술을 해 이번 일에 적극 나설 수 없었고 마음고생만 엄청나게 하신 분』이라며 목멘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은 최철호씨와의 일문일답. ―누님 최현실씨는 왜 북한에 남게 됐나. 『아버지 말씀으론 자신이 건준(建準)활동 때문에 도피생활을 하시다 어머니와 삼촌들이 한때 모두 잡혀가는 등 집안이 어수선했다고 한다. 월남할 당시 할아버지께서 「외로우니 여섯살짜리 맏손녀는 남겨두고 가라」해서 큰누님 혼자 남게됐다는 것이다』 ―탈출을 돕기위한 계획은 언제부터 세웠는지. 『지난 7월경 연변에 나온 누님이 뉴욕의 집으로 전화를 해왔다. 당시 일가족이 전부 탈출하겠다고 해 성사가 되더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돌볼수있을지막연했지만 아버지의 염원은 「어떻게든도와라」는한가지였다』 ―어떻게 추진했나. 『지난 5개월여 동안 누님가족의 탈북 및 망명과정에 대해선 엄청난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누구 누구가 어떻게 도와줬다고 말하면 그분들이 온전하겠는가』 ―매형인 김경호씨는 중풍으로 몸이 성치 않다는데…. 『매형의 고향은 서울 금호동이라한다. 매형은 거동이 편치 않을 지경인데도 「서울에서 죽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또 매형의 친인척이 서울에 살고 있어 그들을 만나보고 죽게 해달라는 말을 누님편에 전해 왔었다』 ―누님가족과는 처음에 어떻게 연락이 됐는지. 『아버님은 미국에 온 뒤에도 늘 북에 두고온 큰누님 소식을 목말라했다. 이 때문에 친북성향인 캐나다의 가족찾기위원회에 기부금도 내면서 누님을 찾아 나섰으나 「건준활동 경력자의 가족」이라 실패하고 결국 다른 통로로 누님가족과 선이 닿게 됐다. 그동안 여러차례 생활비를 부치기도 했다』 ―이제 탈북이 성공했고 한국망명도 가능한데 함께 살 계획이 있는지. 『어찌보면 한국이 훨씬 살기 나은 곳이 아니겠는가. 미국에 초청할 방법도 마땅치 않고 솔직히 대가족의 생계를 도모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천신만고 끝에 누님 일가족의 북한탈출이 성공해 병석에 계신 아버님이 기뻐하셔서 나도 기쁘다. 곧 서울에서 상봉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풀러싱지역에서 세탁업을 하다가 최근 식품점을 운영중인 최씨는 아버지는 치과의사가 아니라 치과기공사로 일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연로해서 은퇴했다고 전했다. 〈뉴욕〓李圭敏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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