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한반도의 핵동학
화정평화재단-국제정책연구원 공동 학술회의
“북핵은 동북아 안보의 장기적 문제… 기존 비핵화 정책으론 관리 어려워
美 위기관리 전략, 韓엔 위험 될수도… 韓은 당장 ‘핵잠재력’ 확보가 현실적”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이 ‘변화하는 한반도의 핵동학’을 주제로 개최한 국제학술회의가 22일 서울 영등포구 켄싱턴호텔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앙킷 판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 시드니 사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 등 해외 전문가와 김성한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선임연구위원, 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 등 국내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북한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와 북-러 군사협력 강화 등 달라진 안보 환경 변화 속 북핵 문제 해법 등을 논의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압도적인 최우선(overwhelming and primary) 정책 관심사는 더 이상 비핵화가 아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과 국제정책연구원(IPSIkor)이 22일 서울 영등포구 켄싱턴호텔에서 공동 주최한 국제학술회의에서 미국의 핵 전문가인 앙킷 판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이같이 말했다. 미국의 북핵 정책의 우선 순위가 비핵화에서 한반도 핵 전쟁 위험 억제로 이동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변화하는 한반도의 핵동학’을 주제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 국내외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북한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와 북-러 군사협력 강화, 미중 전략경쟁 심화 속에 북핵 문제가 기존 비핵화 정책으로는 관리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한반도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힌 데 이어 북중이 시 주석의 방북을 준비하는 정황이 포착된 가운데 미국 대북 정책의 전환 가능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화정평화재단 이사장인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은 기조연설에서 “앞으로 10년이 한반도와 동아시아 안보 미래를 가늠할 가장 중요한 시기”라며 “북한 핵능력의 강화는 ‘비약적’이라는 말 이외에는 다른 표현이 없다”고 강조했다.
● “북핵, 동북아 안보 지형의 장기적 특징”
판다 선임연구원은 “북한 핵 프로그램은 적절한 조건이 마련되면 포기할 협상 카드가 아니다”라며 “북한 핵 프로그램은 해결을 기다리는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 안보 환경의 장기적 특징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어 “오늘날 비핵화 목표는 정책적으로 의미 있는 어떤 시간표 안에서도 달성 가능하지 않다”며 “대북 전략을 이 목표에 계속 묶어둘수록 예측 가능한 실패가 반복되고, 북한의 능력 고도화에 맞선 안보 이익은 더 악화된다”고 지적했다.
6자회담 차석대표 등을 지낸 시드니 사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도 “북한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안전 보장에 관심이 없다. 그들의 핵무기가 그들의 안전 보장”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북-미, 남북 간 대화가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문제는 김정은”이라며 “미국이 관심이 없어 대화가 없었던 문제가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사일러 고문은 “북한은 군비통제(군축)를 중심으로 하는 어떤 접근에도 유인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며 북핵 정책을 비핵화에서 군축으로 전환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영상 축사에서 “이른바 군축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는 것은 중대한 실책”이라며 “이는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굳히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했다.
회의에서는 대북 정책의 목표를 비핵화에서 핵 전쟁 위험을 낮추는 위기 관리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한국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워싱턴의 ‘차가운 평화’가 서울에는 ‘뜨거운 위험’이 될 수 있다”며 “북한 핵 문제의 현실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평양의 전략적 승리로 바뀌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상대가 당신의 존재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데 안정적 공존은 불가능하다”며 “북한은 우리를 공존할 파트너가 아니라 언젠가 병합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북한이 한국을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핵·재래식 전력을 함께 증강하는 상황에서 “지금 우선순위는 공존이 아니라 더 강하고 정교한 억제와 위기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했다. ● 韓 선택지는 핵잠재력·핵무장·재래식 억제
중국과 러시아의 태도 변화도 북핵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자오퉁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핵비확산 목표보다 단기적 지정학적 이해를 우선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은 2024년 5월 이후 한반도 비핵화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중단했다”며 “이는 핵을 보유한 북한에 대한 암묵적 수용을 시사한다”고 했다.
제프리 맨코프 미 국방대 연구원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한과의 전략적 연대를 위해 핵 비확산 원칙을 후순위로 밀어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러시아는 이제 북한이 핵무기 보유 국가라는 생각을 받아들였다”며 “남은 질문은 비확산 질서를 훼손하는 데 있어 러시아의 ‘레드라인(red line·한계선)’이 무엇이냐는 것”이라고 했다.
회의에선 북핵에 대응한 한국의 선택을 두고 첨단 재래식 억제력 강화와 핵 잠재력 확보, 핵무장론 등의 주장이 엇갈렸다. 현 전 장관은 “미국의 핵 억지력에 의존하는 안보는 필요조건이지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라면서도 “당장은 한국이 ‘핵 잠재력’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철저한 투명성 확보와 미국과의 사전 협의 및 긴밀한 공조를 통해 핵 잠재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로버트 켈리 부산대 교수는 미국 확장 억제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한국 핵무장론을 주장했다. 그는 “미국은 외국인을 위해 핵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은 핵보유국을 재래식 무기로만 억제하려는 비대칭적 군사 균형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반면 정구연 강원대 교수는 독자 핵무장보다 정밀 타격, 미사일 방어, 우주 기반 감시, 사이버·전자전, 드론 등 첨단 재래식 억제력 강화가 더 실용적 선택지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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