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채 상병 특검법’ 강행… 尹, 거부권 방침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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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단독처리… “尹도 수사 대상” 입장
尹-李 회담 3일만에 ‘대통령 정조준’
대통령실 “野 나쁜 정치, 엄중 대응”
與 “입법 폭주… 거부권 건의할 것”

與 퇴장 속 특검법 통과 2일 오후 국회에서 ‘채 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재석 168인 중 찬성 168인으로 의결되고 있다. 표결에 앞서 국민의힘은 퇴장해 
의석이 비어 있다. 국민의힘에선 김웅 의원이 유일하게 표결에 참여해 찬성표를 던졌다. 뉴스1
與 퇴장 속 특검법 통과 2일 오후 국회에서 ‘채 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재석 168인 중 찬성 168인으로 의결되고 있다. 표결에 앞서 국민의힘은 퇴장해 의석이 비어 있다. 국민의힘에선 김웅 의원이 유일하게 표결에 참여해 찬성표를 던졌다. 뉴스1
‘채 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도중 해병대 채모 상병이 순직한 지 288일 만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첫 회동 이후 사흘 만에 민주당이 윤 대통령을 정조준한 특검법을 강행 처리한 것에 대해 대통령실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대통령실이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면서 21대 국회 막판까지 여야의 극한 대치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채 상병 특검법은 이날 재석 168명 중 168명 전원 찬성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항의의 의미로 표결 전 본회의장을 나갔으며, 김웅 의원만 남아 찬성표를 던졌다. 민주당 주도로 지난해 10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달 3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됐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채 상병 특검법의 본회의 상정은 불투명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하는 민주당에 여당과 합의하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다. 하지만 막판 의견 조율을 위해 본회의 직전 소집된 여야 원내대표 회동마저 빈손으로 끝나자 김 의장도 결국 민주당의 손을 들어줬다.

이날 통과된 채 상병 특검법은 사실상 윤 대통령을 정조준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특겁법에 명시된 수사 대상에 대통령실이 포함되는 만큼 윤 대통령도 수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특검법이 처리된 지 1시간 30분 만에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어 “(민주당이) 채 상병 특검법을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고 했다. 정 실장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적으로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는 것은 진상 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일방 처리된 특검법이 한국을 혼란에 빠뜨리는 사례로 남을 것이란 우려가 큰 만큼 대통령실은 향후 엄중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엄중 대응은 사실상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 직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입법 폭주 규탄대회’를 열고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전날 여야가 합의한 이태원참사특별법 수정안도 재석 259명 중 찬성 256명, 기권 3명으로 가결됐다. 2월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에 직회부된 전세사기특별법도 재석 268명 중 찬성 176명, 반대 90명, 기권 2명으로 본회의 부의가 확정됐다.

尹-李 회담 3일만에 ‘특검 충돌’… 대통령실 “죽음 악용한 나쁜 정치”


대통령실 “협치 잉크 마르기전 폭주”
‘채 상병 특검법’ 단독처리 강력비판
野 “거부권 행사 말고 민심 수용해야”
尹 거부권땐 27일경 국회 재의결… 與내부 “이탈표 가능성 배제 못해”
“협치 첫 장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더불어민주당이 입법 폭주를 강행했다.”(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보다 겸허한 자세로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고 잘 집행하는 것이 민생을 받드는 것이다.”(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원내수석부대표)

채 상병 특검법이 2일 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하자마자 민주당과 대통령실이 정면충돌했다. 대통령실은 법안이 본회의에서 가결된 지 1시간 30분 만에 “진상 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공개 입장을 내면서 강하게 반발했고, 민주당도 ‘맞불 기자회견’을 열어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비판했다.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우여곡절 끝에 회동하며 협치 물꼬를 튼 지 3일 만에 양측이 다시 정면충돌하며 21대 국회 막판까지 극한 대립의 정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민주당 “국민의 원칙 따른 것”

특검법 통과 이후 전략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와 박찬대 의원이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회동한 지 3일 만인 이날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뉴시스
특검법 통과 이후 전략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와 박찬대 의원이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회동한 지 3일 만인 이날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뉴시스
애초 채 상병 특검법은 이날 본회의 처리 대상 안건에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태원참사특별법과 전세사기특별법 본회의 부의 안건에 대한 표결이 끝난 뒤 민주당은 채 상병 특검법도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해 달라는 ‘의사일정변경 동의의 안’을 올렸다. 이날 오전까지 여야의 팽팽한 의견 차 속 고심을 이어가던 김진표 국회의장은 본회의장에서 “이 안건은 21대 국회 임기 내에 어떠한 절차를 거치든지 마무리돼야 한다”며 채 상병 특검법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 이날 채 상병 특검법 처리를 밀어붙인 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채 상병 특검법이 지난달 2일 본회의에 부의됐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패스트트랙을 거쳐 본회의에 부의된 안건이 자동 상정되려면 60일의 추가 숙려 기간을 거쳐야 한다. 21대 국회 임기가 이달 29일에 끝나는 만큼 자동 상정을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재의결까지 최대 15일이 걸릴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김 의장이 이달 4일부터 18일까지 한-멕시코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재개 등이 관련된 믹타(MIKTA) 회의 참석차 북남미 주요 국가 순방을 떠나는 만큼 이날 처리해야 재의결을 위한 물리적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본회의 직후 국회 로텐더홀에서 ‘입법 폭주 규탄대회’를 열고 “야당 원내대표가 여당 원내대표를 기만하고 국회의장은 민주당과 짬짜미로 입법 폭주를 했다”며 민주당과 김 의장을 싸잡아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오전까지 “채 상병 특검법도 야당에서 특검을 추천하도록 한 점 등 몇 가지만 서로 조정하면 합의 여지가 있다”며 처리 시점을 늦춰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특검법이 끝내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되자 표결을 거부하며 퇴장했고, 특검법은 10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 대통령실 “민주당, 죽음 이용한 나쁜 정치”

대통령실은 즉각 민주당을 성토했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현재 공수처와 경찰에서 철저한 수사가 진행 중이므로 수사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우리 법률이 정한 특검 도입의 취지”라고 주장했다.

그는 윤 대통령과 이 대표 간 회담을 언급하며 “영수회담에 이은 이태원특별법 합의 처리로 여야 협치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높은 시점에서 대통령실은 민주당의 일방적인 입법 폭주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고도 했다.

이어 ‘엄중 대응’을 예고하며 사실상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정 실장은 “지금까지 특검이 13차례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루어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며 “일방 처리된 특검법이 한국을 혼란에 빠뜨리는 사례로 남을 것이란 우려가 큰 만큼 대통령실은 향후 엄중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윤 대통령도 수사 대상에 포함된다”고 벼르고 있는 데다 대통령실 전현직 참모들이 수사 선상에 오르내리게 되는 만큼 윤 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하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정 실장은 ‘거부권’이라는 단어는 언급하지 않았다. 보수층에도 채 상병 사망 수사 외압 의혹 실체 규명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아서다. 윤 대통령의 잦은 거부권 행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만만치 않다는 점 또한 대통령실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지금까지 국회 통과 법안 9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이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거부권 행사 여부를 좀 더 신중히 살펴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與 내부선 ‘재의결 이탈표’ 우려도

대통령실의 거부권 행사 시사에 민주당도 곧장 반박에 나섰다. 박 원내수석부대표는 본회의 후 조국혁신당 박은정 당선인 등과 함께 ‘채 상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 경고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이 특검법을 수용하길 촉구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이달 27, 28일 본회의에서 재의결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재의결에서 통과되려면 재적 의원(296명)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범야권과 여권이 각각 181석, 115석(국민의힘 113석·하영제 무소속 의원·황보승희 자유통일당 의원)임을 고려 시 여권에서 17표가 이탈하면 의결 정족수(198석)를 채울 수 있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유채연 기자 ycy@donga.com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채 상병 특검법#입법 폭주 규탄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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