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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정치

“한국어 하면 월급이 3배” 베트남은 한국어 열풍…北에선 ‘괴뢰말찌꺼기’라며 단속

입력 2022-11-29 18:00업데이트 2022-11-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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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베트남에 부는 韓 열풍(하)
베트남 국립외국어대 한국어 및 한국문화학부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베트남 국립외국어대 한국어 및 한국문화학부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최근 북한은 한류를 차단하기 위해 잇따라 상상 이상의 혹독한 처벌이 따르는 법률을 새로 제정했다. 2020년 12월에 만들어진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남조선 영화나 록화물, 편집물, 도서를 유입, 유포한 경우 무기노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집단적으로 남조선 영화나 록화물, 편집물, 도서를 시청, 열람하도록 조직하였거나 조장한 경우’에도 사형이며, 단순한 시청에도 15년 로동교화형을 선고하고 있다.

2021년 9월에도 ‘청년교양보장법’을 제정해 ‘사회주의 생활양식 확립을 위한 사업에서 청년들이 하지 말아야 할 사항들과 기관·기업소·단체·공민이 하지 말아야 할 사항, 청년교양보장법의 요구를 어기는 위법행위를 했을 때 어떤 법적 책임을 지게 되는지’를 규제했다.

이제 북한에선 부부 사이에 ‘오빠’라고 하거나 애인을 ‘남친’ ‘여친’이라고 부르게 되면 괴뢰말찌꺼기를 쓴다고 보위부에 끌려가 심문을 받아야 한다. 김정은은 왜 한류 열풍에 이처럼 극도의 공포감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달 초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KPF 디플로마 베트남 전문가’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베트남을 방문하면서, 한류가 얼마나 무서운 바람으로 번질 수 있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살면 한류의 위력을 실감할 수 없지만, 해외에선 일부러 의식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주성하 기자주성하 기자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북한이 ‘한류’를 막겠다고 전대미문의 강력한 처벌 제도를 새로 제정하고 있는 동안, 사회주의 베트남은 한류에 홀려 있었고, 북한이 괴뢰말찌꺼기라고 혐오하는 한국어는 베트남 사람들에겐 너도나도 배우고 싶은 언어가 됐다.

2021년 베트남 정부는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지정했다. 제1외국어가 되면 초중고 10년 교육 과정 내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다. 각 학년은 주당 3시간씩, 연간 105시간의 한국어를 배우게 된다. 베트남에서 제정된 제1외국어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6개였는데 한국어가 1외국어로 격상되면서 7개가 됐다.



내년까지 베트남의 62개교에서 1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한국어 과정에 등록해 공부할 예정이다. 현지에서 한국어의 위상은 7번째로 지정된 제1외국어 이상이다.

베트남 국립외국어대 쩐티흐엉 한국어 및 한국문화학부 학부장은 “많은 대학에서 한국어 전공 학생 입학 점수가 항상 상위에 속해있으며 우리 대학의 경우 시험에서 만점을 받아야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베트남에선 53개 대학에서 한국어학과 및 교양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어 열풍을 타고 외국에 대한 한국어 및 한국문화 보급을 위하여 설립된 특수법인인 세종학당도 베트남에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베트남은 전 세계에서 세종학당이 가장 많은 나라에 속한다. 현재 전 세계에서 운영되는 244개의 세종학당 중 23개가 베트남에 있다. 2011년 베트남에 3곳으로 진출한 이후 10년 만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 세종학당을 거쳐간 수강생만 누적으로 58만 명에 이른다.

베트남에서 한국어가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는 한류 열풍과 더불어 월급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 쩐티흐엉 학부장은 “한국어과를 다니면 3~4학년 때 한국 기업에서 미리 찜을 해놓고 졸업 이후 취직시키는데, 취업률이 100%”라고 설명했다.

이규림 베트남거점 세종학당 소장이 베트남에서 한국어의 위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이규림 베트남거점 세종학당 소장이 베트남에서 한국어의 위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이규림 베트남거점 세종학당 소장은 “현지에서 베트남어를 하면 월급이 1배, 영어를 하면 월급이 2배, 한국어를 하면 월급이 3배라는 말이 돈다”며 그만큼 한국 기업이 선망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지 대학 교수의 월급이 300달러 좌우인데 비해 한국 기업에 취직하면 3배 정도의 월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한국어 졸업자 중 우수한 학생은 최우선적으로 한국 기업으로 가려 한다. 이 때문에 학교들에서 한국어 교사 부족 현상은 만성적인 일상이 됐다.

한국 유학길에 오르는 베트남 학생들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9년 한국 내 베트남 유학생 비중은 2.3%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엔 23.5%로 10배 넘게 증가했다. 이런 바람을 타고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들의 숫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 공식적으로 등록하고 거주하는 베트남인은 약 17만9000명으로, 한국계 중국인(15만4000여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외국인 비율을 차지했다.

비공식적인 체류까지 더하면 국내에 거주하는 베트남 인구는 훨씬 더 늘어나게 된다. 지난달 강원도 양양국제공항을 통해 국내에 무비자로 들어온 베트남인 100여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이 한국에서 불법 체류를 택한 이유는 베트남에서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한국에 체류하면서 한국어를 익힌다면 나중에 강제추방이 되더라도 베트남 한국 기업에 취직해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한다는 것은 베트남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한국 문화 콘텐츠를 남들과 다르게 소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트남에서 강풍으로 커지고 있는 한국어 배우기 열풍은 언어가 갖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를 넘어 권력이자 동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에 비해 모든 것이 열세인 북한은 한국어를 괴뢰말찌꺼기라는 혐오의 단어로 규정해 한국에 대한 동경과 호감을 차단하려 하는 것이다. 경제력과 문화에서 두드러지는 열등감을 혐오와 증오로 메우려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사에 사례를 찾기 힘든 무형의 언어와의 전쟁은 성공할 수 있을까. 베트남을 보니 어렵지 않게 대답을 찾을 수 있을 듯 싶다. 한국의 국력이 북한을 압도하는 한 김정은은 종전을 선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늘 전쟁 중인 나라는 언젠가는 망할 수밖에 없다.
하노이·호치민=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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