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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정치

“강대국 사이 약소국 전략실패는 큰 댓가” 보여주는 우크라이나 사태[화정안보인터뷰]

입력 2022-01-24 13:43업데이트 2022-01-2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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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문가 허승철 교수 인터뷰


우크라이나는 삼면초가(三面楚歌)의 위기다. 러시아가 2014년 병합한 남부 크림반도와 동부 접경 돈바스의 반군 장악지역 그리고 북부 벨라루스와의 접경지역에 12만 명 이상의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켜 놓고 세 방면에서 군사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러시아와 비교해 병력과 장비, 무기 등에서 절대 열세인 우크라이나는 개전 시 30분 밖에 못 버틴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중간 패권 경쟁과 갈등을 ‘신냉전’이라고 하면 우크라이나 사태는 상대가 구소련에서 러시아로만 바뀐 것을 빼면 ‘냉전의 부활’에 가깝다. 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 양측이 냉전 시대에 형성된 전선에서 맞붙고 있고 주장하는 논리도 냉전시대에 세력 다툼의 논리인 ‘영향권’이다. 구소련 붕괴 이후 30년 가량 유럽에 수면으로 내려앉았던 냉전의 기운이 되살아나고 있는 양상이다.

러시아는 구소련이 붕괴한 뒤 독립한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하는 경우 안보의 위협을 받는다며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해 무력 침공도 불사할 기세다. 미국 등 서방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러시아주의 야망에 따라 소련 제국의 부활에 근본적 원인이 있다고 보고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러시아는 동부 국경 돈바스 지역의 반군을 지원하고 있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갈등은 ‘대리 내전’ 상태에 있었다. 하지만 왜 갑자기 상황이 악화되었는지, 우크라이나에서 높아지는 긴장이 한반도에는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허승철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에게 들었다. 허 교수는 주 우크라이나 대사(조지아 몰도바 겸임)를 지냈고 한러대화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허승철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전 주 우크라이나 대사)


미-러 양보 불가 지정학적 요충지 우크라이나
-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러시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의 회담은 예상했던 대로 사태 해결을 위한 별다른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 다만 러시아의 제안에 미국이 서면 답변을 하고 러시아가 이를 검토한 뒤 다시 대화를 이어가기로 하면서 잠시 시간은 벌었다. 하지만 마주 달리던 열차를 잠시 세워놓았을 뿐이다. 미국과 러시아, 유럽과 러시아 간에 회담이 잇따라 열리고는 있지만 양측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멀고 가까운 다층적인 요인이 바탕에 깔려 있다. 멀리는 1991년 구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가 독립했지만 러시아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바탕에 깔려 있다. 러시아의 뿌리는 우크라이나 키예프공국에서 출발했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 문화와 역사의 발상지라고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독립하기 전까지 300년 넘게 한 국가였다는 의식이 남아있다.”

-역사 문화적인 이유만으로 엄연한 독립국인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서부 반군을 지원하면서 국경을 넘으려고 하는 것은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 현상변경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이다. 우크라이나 위기는 1990년대 말부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확장시킨 서방과 강대국 지위를 다시 찾으려는 러시아간의 충돌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독일 통일을 허용할 때 ‘공동의 집으로서의 유럽’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며 러시아가 포함된 유럽 질서 구축 구상을 밝혔다. 당시 미국의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은 ”NATO는 동쪽으로 1인치도 이동하지 않는다“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후 NATO의 동진은 계속됐다. 러시아는 속으로는 부글부글 했어도 구소련 붕괴 후 혼란과 경제 침체 등으로 강하게 반발하지 못했다. 냉전을 거치면서 국력이 쇠락해 반발할 여력도 부족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까지 NATO에 가입하면 지정학적 완충지대가 사라져 자국의 턱밑까지 밀고 들어오는 형국이라 자국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러시아는 NATO의 동진이 러시아에 위협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나 이미 NATO에 가입한 동구권 국가들은 러시아의 안보 위협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2차 대전 후 동유럽에 대한 소련의 강압적인 세력권 편입 및 탄압도 있었다. 러시아에도 책임이 있지 않은가.

“2014년 크림반도 합병, 2018년 벨라루스와 벌인 대규모 군사훈련이나 현재 우크라이나 동부 접경지역에 10만 명 이상의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는 것 등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북유럽의 노르웨이, 스웨덴 같은 국가들까지 NATO가입을 고려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러시아와 중국 두 전선 마주한 미국
-냉전 종식 후 구소련이 해체될 당시 미국 등 서방은 러시아 지원에 나서고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친서방 정책을 펴기도 했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구소련 붕괴 후 러시아가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에서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 바 있다. 하나는 ‘성숙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해 윈-윈의 공생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같은 밀월 관계가 안되면 러시아가 주변 지역을 동원해 유럽과 미국을 견제하는 구도를 예상했다. 최악은 러시아가 유라시아에서 반미 동맹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러시아가 중국 이란과 동맹에 가깝게 결집해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고 있다.”

-교수님께서 최근 일민국제관계연구원의 ‘IIRI 보고서’에 발표한 글에서 서방이 당시 러시아와 관계가 틀어진데는 미국이 잘못 대응한 것이 큰 이유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구소련 붕괴 후 러시아를 유럽 질서에 포용하는 정책을 펼치지 못했다. 미국이 마셜 플랜에 버금가는 지원과 포용정책을 펴 러시아에서 시민사회와 중산층이 형성되었다면 지금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미국 인공위성 기업 맥사가 촬영해 공개한 러시아 군용 차량 집결 사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값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AP 뉴시스


-미국은 패권도전국인 중국과의 경쟁 갈등이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와도 전선을 넓혀가고 있다. 미국이 두 개의 전선을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지. 그래서 대중 견제라는 보다 큰 목표를 위해 러시아와의 관계를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70년대 중국과 손을 잡고 러시아를 견제하는 구도를 세웠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중국 견제에 러시아와의 협력 필요성을 제시했다.

“그렇다. 유럽에 포용된 러시아와 손을 잡고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미국의 전략에 맞다. 실제로 그런 노력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가 밀착하여 미국에 대항하는 구도가 되어 미국으로서는 불리한 상황이다. 미중 패권 갈등, 미러 냉전적 갈등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 중-러간 전략적 협력은 당분간 더욱 공고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러가 손을 잡고 중국을 견제하는 상황은 당분간 어려울 듯하다.”

우크라이나 사태 악화일로, 푸틴 때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말한 ‘지정학적 중추’(geopolitical pivot) 국가인 우크라이나는 미러의 ‘외교 단층선’ ‘지정학적 단층선’에서 있어 이곳을 둘러싼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 출범 1년 가량을 맞으면서 위기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 이유가 있나.

“트럼프 정부 때 미국과 탈레반 정부간의 평화협정이 맺어지고 철군 계획이 세워지기는 했지만 바이든 정부에서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가 이뤄졌다. 푸틴은 미국이 힘이 약해졌다고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이런 약해진 미국에 대한 시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는 지 보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이 돌아왔다’며 국제질서의 ‘원상회복’을 내걸고 흑해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재개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강화한 것도 러시아를 자극했다.”

지난해 말 모스크바에서 군사용 소총을 살펴보는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추진과 관련해 서방의 견제가 계속되면 군사대응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모스크바=AP 뉴시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압박의 명분으로 삼고 있는데 최근 NATO 가입을 위한 특별한 행동이나 조치가 있었나.

“그렇지 않다.우크라이나는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1994~2005)때 유럽연합(EU)와 NATO 가입을 국가적인 목표로 선언했다. NATO 가입은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국가 정책이다. 최근 들어 가입을 신청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을 벌인 것은 아니다. NATO도 우크라이나가 가입을 신청한다고 해도 당장은 가입에 호의적인 분위기도 아니다. 러시아가 NATO 가입을 명분으로 압박하는 것이 명분이 약하다.”

이와 관련 토머스 프리드먼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최근 칼럼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푸틴의 장기 집권 야망과도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2024년 선거에서 확실하게 승리하기 위해 전쟁 분위기를 조장한다는 것으로 ‘전시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소연방 해체에 대해 2005년 ‘20세기 최악의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선언했던 푸틴의 소연방에 대한 집착과 향수가 우크라이나 사태의 배경에 있다는 것이 프리드먼의 주장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서면 미국과 서유럽은 무기 추가 공급 지원 같은 군사적 대응 외에 경제적으로 강력한 제재와 대응을 경고했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러시아의 국제은행간 통신협회(SWIFT) 결제 시스템 접근 차단 △러시아와 독일 잇는 ‘노드스트림 2’ 가스관 사업 진행 중단(개통식만 남겨놓은 단계) △친러 인사 자산 동결 등이 대표적인데 러시아에 대한 제재 중에서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은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중간재 수출의 금지도 있다. 러시아 공업의 30~50%까지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외부 압박, 내부 분열 우크라이나의 난맥상
-우크라이나 내부적으로도 국론 통일이 되지 않은 것도 위기를 헤쳐나가는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크라이나에서 정권이 바뀌어 친서방과 친러 성향의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양극단을 오가는 외교정책을 펼쳤다.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고 서방의 지원 의지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자국의 국익과 안보에 필요한지를 반영한 장기적·균형적인 외교정책을 펴야 하는 데 그러지 못했다. 우리도 정권 교체와 외교정책의 신뢰성, 지속성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코미디언 출신으로 부패정권에 맞서며 국민적 지지를 받아 집권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부 통합은 커녕 친러 친서방의 분열이 가열되고 있다. 거기에 국정 무능과 개인 부패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러시아는 역사적 문화적 유대도 깊다는 우크라이나와 왜 이렇게 틀어졌나?

“우크라이나는 2014년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국내 여론에서 친서방과 친러시아 지지율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야누코비치의 실정과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그리고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반군과의 동부 돈바스 지역 내전이 8년 째 지속되면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멀어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위협 등의 강압적 수단 외에 다른 방법을 찾기 어렵다.”

강대국 러브콜 착각하지 말아야, 한반도 시사점
-교수님은 IIRI 보고서에서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이면서도 자국의 전략적 가치를 과대하게 평가하는 경우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약소국이 대립하는 강대국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으면 외교적 지렛대가 생긴 것으로 착각할 수 있는데 이때 큰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1,2차 대전 기간 중 폴란드가 독일, 소련과 모두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착각했다가 양국에 의해 무력 점령당했다. 말이 러브콜이지 강대국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압박으로 바뀔 수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과거 냉전 전선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듯한 느낌인데 우크라이나가 지정학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적절한 외교를 펼쳤는지 실책은 없었는지.

“우크라이나는 강대국 사이의 중소국 외교가 잘못되면 어떤 댓가나 기회비용을 치러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유럽연합(EU)이나 NATO 가입을 추진하는 친서방 정책을 펴면서 러시아로부터는 국제가격이 1000㎥당 250달러 안팎인 천연가스를 계속 50달러로 받기를 원했다. 러시아가 이를 수용할 리가 없다. 러시아는 두 차례나 가스 공급을 중단하고 가격도 올렸다. 경제(러시아)와 안보(미국과 서유럽)를 강대국에 의존한 상태에서 한쪽을 선택하는 경우 위협과 압박을 헤징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지 못해 댓가를 치렀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말이 있듯이 미중 갈등 속 한국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우크라이나는 구소련 붕괴 후 독립할 때는 구소련의 핵무기가 대량으로 배치되어 있어 ‘제3대 핵보유국’이기도 했다. 강대국의 안보 약속만 믿고 핵을 포기해서 영토 일부를 상실하고 안보가 불안해졌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마땅한 동맹체제나 안보 수단을 확보하지 않고 선언과 구속력 없는 합의에 의해 주권과 안보를 맡긴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1994년 우크라이나는 ‘부다페스트 의정서’를 맺었다.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후에는 중국도 가담해 유엔 차원의 조치는 아니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이 모두 참여했다) 등이 안보를 보장할 테니 핵무기를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2007년 우호조약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2014년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합병하고 지금은 동부 국경을 압박하는 사태에 이르렀지만 의정서나 우호조약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비망록, 의정서, 협약 등에 기초한 주권과 영토 보장은 얼마든지 한 순간에 휴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히틀러의 팽창 직전 뮌헨 협정부터 독-소 불가침 협약 등이 아무런 효력이 없었던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는 미러의 힘겨루기와 협상에서 이해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의 참여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구한말 강대국의 흥정과 대결에 의해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되고, 얄타회담에서 강대국 간의 거래로 폴란드와 한반도 운명이 결정된 것은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의 고난과 불행을 잘 보여준다. 국력과 국방력, 국론 통일에 바탕을 둔 주도적 자강 외교는 중견국이나 약소국 모두가 지향해야 할 과제이다.”

구자룡 기자·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장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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