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전단살포 금지는 비대칭 전력 포기 행위다 [우아한 전문가 발언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1일 16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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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발발 당시의 가장 큰 남북한군의 비대칭 전력은 북한군이 소유한 242대의 소련제 T-34 탱크였다. 휴전 67년이 지난 오늘날 남북한군의 가장 큰 비대칭 전력은 여러 국제 단체 및 전문가들이 추정하고 있는 북한 ‘핵 무력’이다. 그럼, 절대적 비대칭 무기인 북한 핵무기와 예상되는 핵무기의 억제력을 이용한 각종 재래식 무력도발을 사전에 억제할 수 있는 우리의 비대칭 전력은 없는가? 그것은 북한 지도부가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북 심리전’이라 할 수 있다.

심리전은 ‘전쟁의 한 축’이다. 무기와 장비 대신, 전파, 음향, 인쇄물, 시각물, 그리고 인터넷이 발달한 최근에는 Cyber 공간을 활용한다. 전통적인 심리전 매체에는 방송 및 확성기, 전단, 대면, 전광판 등 시각 매개물, 각종 물품 등이 있는데, 그중 최근 이슈가 되어 관련 법령까지 만들어진 ‘전단’은 오랜 전통과 함께 타 매체에 비해 제작 및 시행상 용이성, 적용의 광범위성 등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일가 사진이 부착된 대북전단 살포용 비닐풍선이 6월 23일 오전 세로로 펼쳐진 상태로 강원 홍천군 서면 마곡리 인근 야산 하천에서 발견됐다. 독자 제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일가 사진이 부착된 대북전단 살포용 비닐풍선이 6월 23일 오전 세로로 펼쳐진 상태로 강원 홍천군 서면 마곡리 인근 야산 하천에서 발견됐다. 독자 제공

이러한 대북 심리전은 북한군 및 북한 주민에게 있어서 ‘남북실상 비교 및 한국 이해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효과는 상상 이상이다. 1999년 이후 북한 이탈주민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90% 이상이 북한에 있을 때 그 내용을 신뢰했다고 한다.

북한 지도부 및 군부의 지속적인 대북 심리전 무력화 기도가 이를 증명한다. 3만3000여 명의 남한 거주 북한 이탈주민들이 그 효과를 입증해 주었다. 현실적으로 핵무장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심리전은 북한 주민의 민심을 자극하여 체제와 권력의 지탱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우리가 가진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엄연한 휴전상태에서 북한의 무력도발을 사전 억제하고 응징하는 군사작전 일환으로 시행하는 군의 심리전과 민간의 자발적인 대북 전단살포 행위를 법으로 금지한다는 것은 ‘잘못된 입법 만능주의’이자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1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일명 ‘대북전단살포금지법(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가결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김동주 기자 zoo@donga.com
1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일명 ‘대북전단살포금지법(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가결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이 법을 발의하고 찬성한 사람들에게 ‘평화를 빙자한 분단의 지속을 의도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국토통일과 민족통합 준비의 중요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는 ‘대북 심리전’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독재체제와 특권 유지를 희망하는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핵심지도층을 돕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압제의 현실’에서 벗어나 보다 인간다운 삶을 갈망하는 북한 주민들의 미래 행복을 지연 또는 박탈하데 기여할 것이다.

이는 헌법이 명령한 통일준비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민족 대부분 구성원이 갈망하는 미래의 통일국가는 ‘보편적 자유·민주·인권·복지가 보장된 체제’와 ‘건전한 시장경제 체제’의 국가일 것이다. ‘대북 전단 금지법’을 발의한 12명의 국회의원, 그리고 이 법 개정에 찬성한 187명의 국회의원 역시 이러한 ‘미래 통일국가가 갖춰야 할 가치’에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분단 75년간 쌓인 이질화와 적대감은 이러한 가치에 공감하고 민족이 통합하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될 것이다. 김재신 전 독일 주재 한국대사는 독일 통일 30년을 “전반적으로 ‘성공적’ 통합”이라고 하면서도, 한스 모드로(Hans Modrow) 전 동독 총리의 “독일은 아직 하나 되지 못했다”는 주장을 예로 들면서 “사회문화 통합에 상당 시일이 더 소요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물리적인 영토 통일 못지않게 어려운 것이 동·서독 국민 간의 상호 불신 해소와 민족 동질성 회복이라는 심리적 통합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우리는 250여 km 휴전선 철책보다 더 높고 견고한 남북한 민족구성원들이 품고 있는 불신을 극복하고 물리적 통일과 화학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심리적 불신감과 문화적 이질감을 지속적으로 약화·감소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그 중요한 방안 및 수단 중 하나가 심리전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대북 전단살포 금지법’ 시행 전에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일부 제정 및 개정된 ‘대북 전단살포 금지법’ 시행을 중지하고 재개정할 것을 제안한다. 개정 방향에서 먼저, 전단 내용은 일부에서 주장하는 ‘남북 긴장을 조성한다’는 ‘네거티브(negative) 요소’를 최소화하고, 미래 통일국가를 위한 ‘포지티브(positive) 요소’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다. 네거티브 요소는 ‘김정은 일가에 대한 직접적인 비방 금지’로 국한하고, 포지티브 요소는 자유·민주·인권·복지의 중요성 및 시장경제 체제의 우월성과 민족의 동질성을 일깨우는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전단살포 방식은 전단을 제작, 살포하는 ‘민간 자율에 맡기되, 살포 전 통일부의 사전 심의를 받는 방안’이다.

둘째, 현재 남북이 ‘휴전상태’임을 고려하고, 또 북한의 무력도발 억제를 위해 개정 법률상(제24조①항)의 “누구든지”라는 ‘심리전 행위 주체’에서 “군사작전 임무는 제외한다.”라는 단서 조항을 추가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언제라도 핵실험, 미사일 시험 발사, 군사행동 등 무력도발을 할 수 있으므로 시급한 조치가 필요하다.

끝으로, 정파(政派)의 이해관계를 떠나 남북, 민족의 미래까지 아우르는 차원의 입법이 되어야 한다. 물론 ‘접경 지역 주민들의 생존권’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휴전 이후 북한이 자행한 대남 도발 중 ‘대북 전단살포’가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난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행사에서 “우리의 군사력은 우리의 요구대로, 우리의 시간표대로 그 발전 속도와 질과 양이 변해가고 있다”고한 김정은 연설 내용처럼 3,119회의 대남 침투 및 국지도발(침투 2,002회, 국지도발 1,117회, 2018년 국방백서) 역시 그들의 대남혁명전략에 맞춰, 북한 내부 및 대남, 대외 상황과 ‘배합’하여 도발한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다가올 통일국가의 한 구성 축이 될 북한 주민의 미래 운명과 북한 이탈주민(33,718명, 2020년 9월 말 기준, 통일부 홈페이지)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유판덕 한국평화협력연구원·한국DMZ학회 이사 (예비역 중령·북한학 박사)
유판덕 한국평화협력연구원·한국DMZ학회 이사 (예비역 중령·북한학 박사)
‘대북 전단살포 금지법’은 동 법과 관련하여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판적 시각을 떠나, 남한 내부의 국론 통합의 문제요 통일국가 형성을 위한 민족통합과 직결된 문제다. 따라서 이 법이 누구에 의해 발의되었고 찬성되었는지, 그리고 민족 통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일련의 과정이 기록으로 남아 통일국가 후손들로부터 역사적인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개정 법률은 지난해 12월 22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29일 공표되었다. 이 법은 공포 3개월 후부터 발효됨으로 아직 기회와 시간이 남아 있다.

유판덕(한국평화협력연구원 이사/한국융합안보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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