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조율 못한 지도부 ‘비대위 헛발질’… 보수재건 동력 타격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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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당 ‘김종인 비대위’ 무산 위기]金 ‘40대 대권’ 발언에 반발 커지고
중진 주축 반대그룹 세 불렸는데 지도부 낙관한채 ‘金 비대위’ 강행
당선자 총회 격론 끝 결론 못내… 상임전국위 정족수 미달로 무산
전국위서 ‘한시적 비대위’ 의결… 심재철 “金 계속 설득하겠다”

비대위장 수락 호소했지만… 미래통합당 전국위원회가 ‘4개월 김종인 비대위’를 결정한 28일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오른쪽)이 그의 서울 종로구 자택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심재철 당 대표 권한대행과 악수하고 있다. 김 전 위원장 자택에서 40분가량 대화를 나누고 나온 심 권한대행은 “(김 전 위원장을) 계속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뉴스1
비대위장 수락 호소했지만… 미래통합당 전국위원회가 ‘4개월 김종인 비대위’를 결정한 28일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오른쪽)이 그의 서울 종로구 자택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심재철 당 대표 권한대행과 악수하고 있다. 김 전 위원장 자택에서 40분가량 대화를 나누고 나온 심 권한대행은 “(김 전 위원장을) 계속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뉴스1
미래통합당이 28일 임기 4개월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기로 결정했지만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이 이를 수락하지 않겠다고 나서면서 보수 진영이 다시 한번 내홍에 빠져들고 있다. 당 안팎에선 이런 상황을 초래한 1차적인 책임은 총선 후 당의 명운이 달린 새로운 지도체제 출범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채 ‘김종인 비대위’를 밀어붙인 당 지도부에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위원장이 마음을 바꿔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더라도 ‘보수 재건’을 위한 혁신 동력은 상당 부분 잃게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통합당이 총선에서 궤멸적인 패배를 당하고도 당내 권력을 놓고 이전투구를 이어가면서 갈수록 민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8일 오전 당선자 총회가 열리기 직전까지만 해도 ‘김종인 비대위’는 안정적으로 출범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심재철 당 대표 권한대행은 3선 그룹의 요구를 받아들여 당선자 총회를 이날 오전으로 당겼다. 당선자 다수가 ‘김종인 비대위’를 지지하고 있는 만큼 총회를 먼저 개최해도 전국위원회에서 통과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이 전국위 전 “40대 경제통 대선 후보를 발굴하겠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진 후 당 안팎의 반발은 점차 고조됐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등 차기 대선 주자들이 ‘김종인 비대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조해진 김태흠 등 3선 당선자 그룹은 “전국위 자체를 연기하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지도부 예상과 달리 당선자 총회는 격론 끝에 아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끝났다. 3선 당선자 그룹은 물론이고 일부 초선 당선자들까지 “우리 힘으로 해보자”며 강경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선자 총회에서 찬성 여론을 얻어 ‘김종인 비대위’ 안건을 전국위에서 통과시키려던 지도부의 전략이 본격적으로 암초를 만난 것이다. 실제로 지난 주말을 거치면서 김종인 반대 그룹은 세(勢)를 불리고 점점 조직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중진 의원들은 지난주부터 전국위원들을 상대로 “의결정족수를 미달시켜야 한다”며 전국위 불참을 설득했고, “상임전국위를 무산시켜 당헌 개정을 막으면 비대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전략’까지 등장했다. 청년 당원들 사이에서도 김 전 위원장의 ‘무조건 나를 따르라’는 식의 리더십을 거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김 전 위원장의 뜻대로 내년 봄까지 비대위원장을 하려면 8월 31일 전 전당대회 개최를 규정한 당헌을 상임전국위에서 개정해야 한다. 상임전국위가 무산되면 ‘김종인 비대위’가 전국위에서 가결되더라도 8월까지만 유지되는데, 반대 그룹은 이 점을 노린 것.

결국 이날 오후 열린 상임전국위는 전체 45명 중 17명만 참석해 의결정족수(23명)에 미달돼 무산됐고, 323명이 참석해 열린 전국위는 177명의 찬성으로 ‘김종인 비대위’를 의결했다. ‘김종인 비대위’가 출범하더라도 임기를 4개월로 묶는 반대 그룹의 ‘전략’이 성공한 셈이다.

심재철 권한대행과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이날 밤 김 전 위원장의 자택을 찾아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김 전 위원장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고, 심 권한대행은 자택을 떠나면서 “계속 설득할 것”이라고 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4개월 임기만 남은) 이런 상황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 체제로 당장 갈 수 있는 상황은 전혀 아니다”고 했다.

당내 일각에선 김 전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으로서 다시 상임전국위를 열어 임기를 연장하면 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이 ‘셀프 연장’을 염두에 두지는 않을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 정책위의장은 김 전 위원장을 만난 후 “자신의 임기 연장을 위해 당헌을 개정할 생각은 안 하신다”고 말했다. 다만 김 전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을 맡은 뒤 상임전국위가 개편되는 6월 이후 임기 연장을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만약 ‘김종인 비대위’가 출범하더라도 임기 연장이 무산된다면 인적 쇄신 등 김 전 위원장이 공언한 ‘파괴적 혁신’은 시작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많다. 8월 전당대회를 앞둔 당권 다툼이 조기에 시작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에 따라 2016년 총선 패배 직후 두 달간 이어졌던 ‘김희옥 비대위’처럼 사실상 ‘식물 비대위’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유성열 ryu@donga.com·이지훈 기자
#미래통합당#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심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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