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 보유 외화 끌어내려 달러라이제이션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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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7월 9일 09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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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대성백화점 가상 체험으로 알아본 경제
외화 계좌 개설 허용하고 전용카드도 발급
제재 강화됐지만 물가와 환율 안정세 유지

지난 4월15일 평양 문수거리 대성백화점이 새로 문을 열었다. 1986년 개장했던 백화점을 33년만에 재건축한 것이다. 북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새 시대의 미감에 맞게 개건보수 및 증축공사를 실시하여 상업, 편의, 급양 봉사(식사 제공)를 할 수 있는 종합적이며 다기능화된 봉사기지”로 재탄생했다. 연건축 면적은 종전의 2배로, 상품가지 수는 1.5배로 늘어났다고 한다.

지하 1층, 지상 5층으로 된 백화점에서는 지상 1층에 각종 잡화를 판매하는 슈퍼마켓이 들어섰고, 2층과 3층에선 각종식료품과 옷, 신발, 가정용품과 일용잡화, 학용품과 문화용품 등 1만 1,700여종의 상품들을 판매하며 지하에는 수영장, 목욕탕 등 편의시설이, 4층과 5층에는 식당과 오락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머니투데이그룹 부설 평화경제연구소(소장 정창현)가 지난 달 대성백화점을 다녀온 해외 인사로부터 백화점 곳곳을 찍은 사진들을 단독 입수하고 이 사진들을 토대로 대성백화점을 가상 체험하는 보고서를 냈다. 이를 통해 북한 경제 현황을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다음은 보고서 전문이다.

대성백화점은 동평양지역(평양 중심부에서 대동강을 건넌 지역)인 대동강구역 문수거리에 있다. 해외인사들이 묵는 평양 중심부의 고려호텔, 해방산호텔, 평양호텔 등에서 택시를 타고 갈 수 있다. 평양에는 현재 약 6천대의 택시가 운영되고 있다. 택시요금은 기본거리 4㎞에 200원이고, ㎞당 50원이 추가된다.

이때 200원은 ‘내화 원’ 200원이 아니라 ‘외화 원’ 200원이다. ‘외화 원’은 조선무역은행이 1주일 단위로 공시하는 ‘공식환율(국정환율)’이 적용되는 화폐다. 1달러가 100원-105원이다. 따라서 택시 기본요금은 약 2달러인 셈이다.

외국인과 평양시민들이 함께 이용하는 냉면집에서 평양 주민들은 쟁반냉면 1그릇에 4,500원을 낸다. 그런데 외국인은 쟁반냉면 2그릇에 오리불고기 한 접시가 나오는 세트메뉴를 주문하면 500(외화)원을 낸다. 500(외화)원은 약 5달러인데 비해 평양 주민이 내는 내화 4,500원은 시장환율로 0.5달러 정도다. 외국인은 북한 주민보다 같은 음식값으로 2~3배를내는 셈이다.

내화 원의 시장환율은 1달러당 8,000원-8,500원이므로 달러당 100~105원인 외화 원은 내화 원의 약 80배 값에 해당한다. 대성백화점에서도 이같은 내화와 외화의 환율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재건축된 대성백화점은 과거 4층 건물일 때와 비교하면 현대식으로 바뀌었다. 1층에는 일반 주민들도 이용하는 슈퍼마켓이 있다.

슈퍼마켓에는 참깨과자, 쵸콜레트과자(초콜릿과자)가 10,700원의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계피과자는 7,500원, 닭알(계란)과자는 6,400원이다. 시장환율로 환산하면 1달러 안팎이다. 우리 돈 1,000원이면 계피과자 1봉지를 살 수 있다.

주류매장에선 경흥막걸리 1통에 2,300원, 룡성맥주 1병에 2,200원, 1.5리터 생맥주 1통에 13,400원이다. 소주는 1,500원에서 3,000원 정도다. 0.25달러 정도인 룡성맥주는 우리 돈 300원 정도가 된다.

식료품 매장에는 된장이 3kg에 35,800원, 고추장은 1kg에 17,700, 단설기(카스텔라)는 4,500원이 붙어 있다. 참고로 보통강백화점 슈퍼마켓에선 빵 1봉지가 1,500-2,000원, 귤 1kg 39,000원, 배 1kg 6,700원, 사과 1kg에 3,500원 정도다.

1층 슈퍼마켓은 2009년 북한 최초의 대형 슈퍼마켓으로 문을 연 ‘광복지구상업중심’과 유사하다. 이후 해당화관 1층과 보통강백화점, 역전백화점 등에도 슈퍼마켓이 들어섰다. 대성백화점은 값비싼 해외 명품 브랜드와 북한에서 생산한 값싼 상품을 모두 판매한다는 점에서 이들 슈퍼마켓과 다르다.

일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5월 17일자)는 “대성백화점에서는 질 좋은 우리 상품을 눅은(싼) 가격으로 판매하는 평양제1백화점이나 광복지구상업중심 등과 달리 아주 눅은 상품으로부터 가격이 높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품)상품까지 다종다양한 상품들이 갖춰져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말 그대로 우리 상품과 외국상품, 저가격과 고가격의 상품들이 조화를 이뤄 판매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성백화점 1층 슈퍼마켓도 다른 평양의 슈퍼마켓과 마찬가지로 북한산 상품을 주로 판매하며, 가격표도 ‘내화 원’으로 표기되어 있고, 지불도 북한 돈(내화 원)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2층과 3층에선 외화로만 물건을 살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해외에서 수입한 명품 브랜드와 자국산 유명 브랜드의 화장품, 전자제품, 구두, 의류 등의 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전자제품 매장에는 소니, 캐논 등의 해외브랜드 카메라와 일본 소니, 필립스 브랜드 등의 평면TV, 독일 마이바움 정수기와 지멘스의 드럼세탁기, 일본 타이거 전기밥솥과 파나소닉 제품 등 각종 가전제품이 전시 판매되고 있다. 또 샤넬 화장품과 코치 여성 백·구두 매장, 티쏘와 오메가 브랜드의 귀금속·시계 매장, 남녀 명품 의류 매장, 아디다스와 나이키 등 아웃도어 매장도 있다. 3층에는 남녀 의류 매장이 있다.

2층 전자제품 매장에는 북한이 자체 생산하고 있는 ‘아침’, ‘푸른하늘’ 브랜드의 컴퓨터 매장도 별도로 설치돼 있다.

아침컴퓨터회사가 생산하는 데스크탑 컴퓨터 가격은 25,800원, ‘아침’ 노트북은 33,000원-38,700원, 59,400원 등 여러 가지 상품이 있다.

2014년 설립된 푸른하늘전자합영회사는 각종 데스크탑 컴퓨터와 노트북, 판형컴퓨터(태블릿PC), TV 등 연간 10만대의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성백화점 2층 매장에 전시된 ‘푸른하늘’ 노트북 컴퓨터는 50,000~70,000원의 가격표가 붙어있다.

그런데 1층 슈퍼마켓에서 쇼핑을 하고 2층에 올라온 사람들은 이 가격표 때문에 혼란에 빠지기 쉽다. 노트북 1대가 1층참깨과자 3봉지 값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구두 매장의 여자 구두 가격은 1,080원으로 표시돼 있는데, 이 가격대로라면 룡성맥주 1병보다 명품 구두가 훨씬 싼 셈이다.

이는 북한의 이중환율제 때문이다. 내화원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1층과 달리 2,3층에선 국정환율이 적용되는 외화원으로 가격이 표기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080원짜리 여자구두는 내화 시장 환율을 적용하면 0.13달러 정도지만 국정환율을 적용한 실제 가격은 10달러이며 ‘푸른하늘’ 노트북은 500달러-700달러다. 1,000-2,000원에 팔리는 수입 와인은 10달러-20달러 정도다.

이런 이중환율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 관광객들은 혼란스럽지만 북한 주민들이 혼동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물가 수준을 잘 알기 때문이다. 보통강백화점,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식당이나 상점 등은 ‘외화 원’과 달러 를 함께 표기하기도 한다.

한편 1층과 달리 2-3층에서는 외화나 외화가 충전돼 있는 전자카드로 결제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최근 평양에선 현금 대신 전자카드를 많이 쓴다고 한다. 평양 시민의 60%이상이 전자카드를 사용한다는 증언도 있다.

대표적인 전자결제카드로 ‘나래’ 카드가 있다. 카드 사용설명서에 “‘나래’카드는 외화봉사단위들에서 상품 및 봉사대금을 지불할 때 사용하는 전자지불수단으로서 모든 대금지불을 무현금결제의 방법으로 신속 정확히 진행할 수 있게 한다”고 적혀 있다.

또 “지정된 외화봉사단위들에서 발행하며 발행된 카드는 전국의 모든 외화봉사단위들에서 제한 없이 카드잔고 범위 안에서 상품 및 봉사대금 결제에 이용할 수 있고 카드-카드 송금과 손전화기에 의한 대금 결제를 진행할 수 있다”는 설명도 있다.

‘나래’ 카드는 내국용과 외국인용으로 나눠져 있다. 북한 사람들이 발급받는 ‘나래’카드는 대부분 은행계좌와 연동된 카드(체크카드 방식)다.

외국인들은 나래 카드에 외화를 충전해서 사용한다. 카드 값 2.7달러와 필요한 만큼의 외화를 ‘충전’하고 암호를 입력하면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외화 충전은 국정환율을 적용한 외화원으로 이뤄진다. 카드는 외화를 취급하는 시내 대부분의 상점과 봉사시설에 있는 수납코너에서 발급받을 수 있고 출국할 때 호텔과 비행장에서 잔고를 외화로 돌려받을 수 있다.

북한 매체들은 새로 문을 연 대성백화점이 외국인은 물론 평양시민들로 붐빈다고 전하고 있다. 이는 외화를 사용할 수 있는 주민들이 많아 외화를 사실상 공식화폐처럼 사용하는 달러라이제이션이 광범위하게 진행돼 있음을 보여준다.

2001년 북한 당국 추산에 따르면 전체 국가예산의 약 2배에 달하는 돈이 민간의 장롱 속에 잠겨 있었다. 민간에서 유통되는 외화도 30-40억 달러에 이르며 200만 평양 시민들 중 약 10만 명 정도가 시장 활동과 부동산투자 등을 통해 월 2천 달러 이상의 소득을 올린다는 분석도 있었다.

북한이 2009년 전격적으로 단행한 화폐개혁은 주민들이 보유한 외화를 강제로 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화폐개혁은 실패했고 부작용만 잔득 키웠다. 이를 계기로 북한 당국은 외화 소비를 촉진하는 정책으로 전환했다.

휴대폰을 보급하면서 단말기 구입을 외화로만 하도록 했고, 시장환율을 적용해 외화로 물품을 구입하는 것을 장려했다. 기업과 개인이 외화계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허가하고, 외화 전용 카드도 발행했다.

북한의 외화원과 내화원의 환율이 80배나 차이난다는 사실은 북한 돈의 가치가 불안정하며 북한 경제가 그만큼 취약하다는 점을 반영한다. 그러나 주민들이 보유한 외화 사용을 촉진하는 정책 덕분에 최근 몇년 사이 경제제재가 크게 강화됐음에도 불구하고 물가와 환율이 비교적 안정돼 있다.

중국과 베트남의 개혁개방 초기에도 극심한 물자부족으로 인한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외화 유통 자유화를 통해 진정시킨 사례가 있다. 이중환율제와 달러라이제이션은 북한 당국이 시장의 효율성을 깨달고 활용하는 주요 사례가 될 법하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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