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中 “한반도 자주 통일해야” 주장의 의미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3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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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중국은 한반도 통일이 평화적이고 자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속해서 주장해왔습니다. 여기서 자주적이란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북한 정권의 자주성도 존중하는 연방제의 형태를 선호하는 건지? 아니면 국제기구, 다자 혹은 양자 개입을 통해 통일을 이룩하는 것에 반대하는 건지? 중국이 선호하는 자주성을 기반으로 둔 통일 한반도의 모습은 어떤지 전문가분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A. 질문에 감사드리며 다음과 같이 다섯 단락으로 나눠 답변을 해보겠습니다. 질문에는 없더라도 평소 청년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들도 담아보았습니다.

1. 중국이 말하는 ‘자주’와 ‘평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한민족이 하루 빨리 한반도 평화 통일의 바람을 실현하는 것을 존중한다. 한민족이 스스로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실현하는 것을 지지한다.”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면서 발표한 공동성명 5항입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4년 7월 방한 당시 서울대 강연에서 “중국은 남북 양측이 관계를 개선하기를 희망하고 한반도가 궁극적으로 자주(自主) 평화 통일을 실현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시 주석은 방한 계기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도 같은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두 사람의 마지막 정상회담이었던 2015년 9월 베이징 회담에서도 시 주석의 한반도 통일 관련 발언 맥락은 똑같았습니다.

한중 수교 때 “자주”라는 말이 직접 들어가지 않았지만 “한민족 스스로”라는 표현이 포함됐습니다. 중국의 한반도 통일 관련 공식 발언에서 ‘자주’와 ‘평화’가 항상 같이 들어갔다는 점을 우선 눈여겨보는 게 좋겠습니다.

2. 중국외교의 자주와 내정불간섭

다음으로 중국이 외교정책에서 ‘자주’가 어떤 맥락으로 쓰이는지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중국은 독립 자주의 평화 외교 정책을 견지 실행해 왔다. 이와 동시에 여러 국가들과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서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원칙을 견지해 왔다. 우리는 다른 국가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다른 국가가 중국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베이징 외교부 청사 정례 브리핑 현장. 당시 뉴질랜드 정부는 ‘어떤 국가’가 스파이 활동을 통해 자국 정치에 간섭하는 행위에 대한 대응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모두 그 국가가 중국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관한 질문에 루캉 외교부 대변인이 발끈하며 한 말입니다.

중국은 외교정책에서 공식적으로는 내정불간섭 원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외부 세력의 어떤 간섭도 배격한다는 뜻으로 ‘자주’를 사용함을 알 수 있습니다.

3. 북한이 한국에 흡수되는 방식 반대

따라서 중국이 한반도 통일에서 사용하는 자주는 평화와 외부 간섭 반대의 두 가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합니다. 어떤 경우든 중국 대내외 정책의 근간은 안정 추구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더 이해가 쉬울 겁니다. 중국은 자국 발전과 이익에 영향을 끼치는 어떤 ‘현상 변경’도 거부합니다.

중국이 강조하는 평화는 북한 체제가 한국 체제에 흡수되거나 북한 정권이 무너지는 방식으로 통일이 되면 결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방식의 통일은 중국의 국익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고 보는 것이죠.

중국 외교관을 양성하는 외교학원의 왕판 부원장이 2016년 펴낸 ‘대국외교’의 한 대목을 보면 이해가 금방 됩니다. 이 책은 아직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북핵 문제는 단지 통일문제나 핵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동북아, 동아시아 안보의 숨은 재난이다. 북한 사회에 내란이 일어나거나 정치 붕괴가 일어나 남한이 북한을 통일하는 상황이 출현하면 미국의 군사 영향력이 남한에서 북한으로 확대돼 (북중 접경인) 압록강변까지 달할 것이다. 북한이 위험을 무릅쓰고 군사 모험 행동을 해서 한반도에 전쟁이 다시 발생하면 대량의 난민이 중국 동북 지역으로 쏟아져올 것이다. 북한이 사실상 핵능력을 보유했기 때문에 한반도에 다시 핵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어떤 국면이 발생하든 동북아 안보 구조는 거대한 변화가 출현할 것이다. 모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다.”

추이톈카이 주미중국대사는 올해 1월 “한반도 통일이 평화적인 수단으로 이뤄지고 (중국의) 국가 안보를 위해하지 않을 경우에만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태도도 개방적일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4. 통일된 한반도에 미군 주둔 반대


중국이 강조하는 자주는 또한 한반도 통일 과정에 미군이 개입하거나 한반도 통일 이후에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면 안 된다는 함의를 갖고 있습니다. 중국은 통일된 한반도가 미국과 양자 군사동맹을 유지하는 국가가 되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에 미국과 군사동맹인 통일국가가 출현한다면 중국에 더 가까운 북한과 미국에 더 가까운 한국의 현재 한반도보다 중국에 득이 될 게 없겠죠. 중국 학자 중에는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 통일된 한반도에 설사 친미 국가가 들어서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중국은 미국 중심의 양자 군사동맹인 한미동맹, 미일동맹이 냉전의 유물이라고 비판합니다. 동북아시아의 안보는 동북아시아 국가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다시 대국외교의 한 대목을 보면 중국이 왜 한반도 통일을 얘기할 때 자주라는 표현을 빠뜨리지 않는지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의) 핵 포기가 핵문제 해결의 당면한 가장 중요한 임무이지만 핵 포기가 동북아 안보 문제의 근본 목표는 아니다. 동북아 안보 문제의 관건은 여전히 다자안보체제의 수립에 있다. 북핵 해결 과정은 반드시 다자안보체제 수립과 연결돼야 한다.”

왕판 부원장은 “다자안보체제 수립이 지역안보를 안정시키는 구조에 유리하다”고 덧붙입니다. 실은 “다자안보체제 수립이 중국이 주도하는 안보 구조에 유리하다”는 뜻이겠죠.

5. 박근혜 땐 있었고 문재인 땐 없었던 것

중국은 한반도에 통일국가가 들어선다면 안보에서 중국과 협력할 수 있거나 최소한 미중 패권경쟁 구도에서 중립을 지킬 수 있는 국가를 원합니다.

하지만 한반도 통일은 중국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현상 변경’입니다. 동북아 안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변화가 중국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셈이 서기 전에 중국이 한반도 통일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중국은 오히려 남북이 관계를 개선해 한반도에 군사 긴장이 없는 ‘현상 유지’가 지속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볼 것입니다.

흡수통일에 대한 기대가 컸던 박근혜 정부 시절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한반도가 궁극적으로 자주 평화 통일을 실현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남북관계 개선에 중점을 두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는 이런 말이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중국은 한국이 통일 관련 발언을 요청하면 원칙적인 말 한 마디 해주는 선으로 들어주는 정도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적극적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윤완준 동아일보·채널A 베이징 특파원(북한학 석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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