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둘 막둥이의 마지막 사법시험

이호재기자 입력 2017-06-22 03:00수정 2020-07-1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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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사법시험
“우리야 시험이라도 봤지만, 기회 아예 사라져 안타까워”
시험장서 눈 못 떼고… 쪼그려 앉은 칠순의 어머니가 마흔두 살 막내아들이 ‘마지막 사법시험’을 보고 있는 시험장을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는 21일 제59회 사법시험 2차 시험이 치러진 연세대 백양관 앞에서 시험이 시작된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꼬박 자리를 지켰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어머니는 20년간 도시락을 쌌다. 10년은 아들의 학창시절을 위해, 다음 10년은 아들의 사법시험을 위해서다. 21일 어머니는 아들의 ‘마지막 도시락’을 쌌다.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양관. ‘제59회 사법시험 제2차 시험’이 열렸다. 전날 어머니와 아들은 강원 강릉시의 집을 떠났다.

연세대 근처 모텔에서 하루를 지내고 아들을 먼저 시험장에 보낸 뒤 어머니는 시험장 앞을 찾았다. 한 손에는 어김없이 도시락이 든 가방이 있었다. 지난 10년간 사법시험일마다 늘 하던 일이다. 점심까지 남은 시간은 2시간. 칠순의 어머니는 마흔두 살 막내아들이 혼자 밥을 먹게 놔둘 수 없었다. 이어 차가운 땅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아들을 기다렸다.

어머니는 자주 무릎을 굽혔다 폈다. 식당일을 40년이나 하면서 무릎이 상한 탓이다. 애가 타는 듯 계속 구형 휴대전화를 열고 닫으며 시간을 확인하던 어머니는 시험장을 바라보며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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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똑똑했다.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늘 ‘우등생’이었다. 재수 끝에 서울의 한 사립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사시 패스’를 목표로 삼은 아들은 군대를 다녀와 오로지 책만 들여다봤다. 20대 후반에 사법시험 1차 시험에 붙었다. 그러나 더 이상 서울에서 공부하지 못했다. 형편이 어려워 서울에서 지낼 생활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고향인 강릉으로 내려갔다. 공부만 할 순 없어 어머니 식당일과 밭일을 도왔다. 용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도 했다.

합격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1차 시험에 3차례나 붙었지만 최종 합격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이름 탓인가 싶어 개명(改名)까지 했다. 가정형편 탓에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어머니는 지금도 “아들 뒷바라지 능력이 안 돼 로스쿨을 못 보내 미안하다”고 말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아들의 출세를 위한 사다리가 영영 사라진다는 생각에 어머니는 자주 밤잠을 설쳤다.

오전 시험이 끝났다. 아들이 나오자 어머니는 환하게 웃었다. 김밥을 입에 넣는 아들에게 물을 건네며 “이렇게 밥을 먹여야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아들이 “이제 괜찮다”며 시험장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어머니는 천천히 숙소로 발걸음을 뗐다.

이날 시험장 주변에 모인 다른 응시자의 가족과 친구들은 초조해 보였다. 정모 씨(64)는 “서른 살 딸을 뒷바라지하려고 아내와 함께 강원 원주시에서 올라왔다”며 “딸이 집밥을 먹어야 힘이 난다고 해서 근처 숙소에서 밥까지 해 먹였다”고 말했다.

장수생이나 초심자나 마지막 시험이 안타까운 건 마찬가지다. 한 응시자는 “나야 이렇게 시험이라도 봤지만 후배들은 아예 기회조차 없게 된 것이 안타깝다”며 “오래 공부한 탓인지 솔직히 시험 후 미래에 대한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이번 2차 시험은 나흘에 걸쳐 치러진다. 10월 12일 응시자 186명 중에서 약 50명의 합격자가 발표된다. 이들은 3차 시험인 마지막 면접만 무사히 통과하면 마지막 ‘사시 패스’의 주인공이 된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사법시험#로스쿨#제59회 사법시험 제2차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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