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 영정 든 우상호·배우 우현 사진 재조명…우상호 “넋이 나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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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6월 9일 1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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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우상호 의원 홈페이지
사진=우상호 의원 홈페이지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고(故)이한열 열사의 최루탄 피격 사건이 일어난 지 30년이 된 가운데,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서는 한 장의 사진이 화제가 됐다.

이한열 열사 장례 집회에서 이한열 열사의 영정사진을 든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전 원내대표와 태극기를 들고 있는 배우 우현이 비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이 사진은 미국 한 시사잡지에서 ‘이 주의 사진’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우 전 대표는 6월 항쟁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같은 학교 경영학과 2학년 이한열군이 정문 시위 도중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을 때 현장에 함께 있었다. 우현은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 사회부장이었다.

우 전 대표는 7일 MBC 라디오 ‘시선집중 광주’에 출연, 당시 상황에 대해 “1987년 6월9일 당시 집회와 시위는 평화적이었고, 다음날 총궐기를 위한 출정식이었기 때문에 학생이 희생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며 “이한열 열사의 최루탄 피격 당시 너무나 괴로웠고 (충격적인 사실에) 넋이 나갔었다”고 말했다.

그는 “무장도 하지 않고 평화적 집회를 하던 학생들에게 경찰이 최루탄을 곧바로 겨누고 총 쏘듯이 최루탄을 발사했기 때문에, (학생회장인) 저는 대열 안쪽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이한열 군은 재빨리 피하지 않고 끝까지 선두를 지키다가 희생이 됐다”며 “처음에는 ‘치료받으면 괜찮겠지’하고 병원으로 옮겼는데 응급실에서 바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서 뇌사 상태로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가 7월5일 결국 숨을 거뒀다”고 회고했다.

배우 우현도 지난 4월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최루탄이나 이런 탄은 보통 시위 진압용이라 해산 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45도 이상 각도로 쏴야 하는데 그 즈음에는 직격탄으로 빵빵 쏴대는 그런 분위기가 많았다”고 떠올렸다.

또 우현은 2014년 한 방송에서 “내가 1980년대 중반, 대학 다니던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두차례 갔다와 군대를 못 가게 됐다”며 “군대에 꼭 가고 싶었는데 지금도 아쉽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동아닷컴 디지털뉴스팀 dn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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