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재협상서 한국 양보 노려 ‘사드 사용료’ 위협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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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청구서]사드 비용 요구 5가지 궁금증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경북 성주군에 배치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관련해 “사드는 10억 달러(약 1조1300억 원)짜리 시스템이다. 한국이 사드 비용을 내는 게 적절하다고 한국 측에 통보했다”고 밝히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북핵 위협에 대처하는 한미 동맹의 상징적 조치인 사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의 한미 간 합의를 뒤집고 돈을 내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즉각 트럼프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서 한미 간 북핵 공조 균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주장을 둘러싼 다섯 가지 궁금증을 분석한다. 》


[1] 10억 달러는 무슨 비용인가

성주에 배치된 사드 1개 포대 가격에 근접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인터뷰에서 밝힌 사드 비용 10억 달러는 일단 성주에 배치된 사드 포대 비용 전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인터뷰 후 국무부 전직 관리를 인용해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의 총비용은 12억 달러 정도 된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2억 달러(약 2260억 원)가 차이 나는데 트럼프의 발언을 그대로 해석하면 사드 운송비용이나 인건비 및 기타 자체 경호 비용을 빼고 사드 1개 포대(발사대 6대, 탐지레이더, 교전통제소, 요격미사일 48발 등) 도입 비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드 1개 포대 가격은 레이더와 요격미사일 수량 등에 따라 1조∼2조 원대로 추정된다.

하지만 성주에 배치된 사드는 주한미군 전력으로 운용되는 만큼 이를 한국이 돈을 내고 도입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사드라는 첨단무기 배치에 대해 한국이 동맹 차원의 ‘성의 표시’를 하라는 의미라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서 한국을 방어하는 사드의 향후 운용 및 유지비 상당 부분을 한국이 부담하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 국방부 고위 소식통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사드 배치 시 공동 분담(cost sharing) 정신의 사례가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2] 韓美 당국간 애초 약속은 뭐였나

‘美가 운용 비용, 韓이 부지-시설 제공’ 약정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드 배치와 관련해 한미 간 기존 합의나 약속에 대한 언급 없이 무조건 “사드로 한국을 보호해주는 만큼 한국이 돈을 내야 한다”고만 했다.

국방부와 외교부는 그동안 한국에 들여오는 사드의 운용·유지 비용은 미국이 부담할 것이라고 밝혀 왔다. 사드는 미군 방공전력이고, 운영 주체도 주한미군인 만큼 미국 정부가 관련 비용을 책임지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사드 부지와 기반시설(전기, 용수) 등을 부담하고, 사드 배치 비용은 ‘미국 몫’임을 여러 차례 밝혀 왔다. 현재 주한미군에 배치 운용되는 다른 전력도 이런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지난해 3월 사드 배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출범한 한미 공동실무단의 약정에도 이 같은 비용 분담 원칙이 명시돼 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도 지난해 7월 사드 배치 결정 직후 국회에 출석해 사드 운용 비용 전액은 미국 부담이라고 밝힌 바 있다.

[3] 트럼프가 애초 합의 몰랐을 가능성은

취임前 사안이라 이해 부족? 알고도 모른척?


공직 경험이 없고 이제 막 취임 100일(29일)을 맞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전 추진되고 논의됐던 사드 관련 한미 간 합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사드 비용 부담’을 주장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신경전을 피해 사드 배치만 신경 쓰고 정작 한미 간 관련 협상 내용을 미처 다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사드 배치 반대 여론이 여전하고,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정부가 비용 분담을 전제로 한 사드 배치를 추진할 수 있겠느냐”며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간 협상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안보회의(NSC) 국가정보국(DNI)에서 매일 온갖 외교안보 기밀 정보를 보고받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관련 협상 내용을 충분히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하며 사드 청구서를 내밀었을 수도 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기간부터 주한미군 주둔 비용과 관련해 “왜 한국이 주한미군 비용을 100% 다 내면 안 되느냐”고 주장해왔다. 이는 내용만 다를 뿐 이날 밝힌 사드 비용 관련 주장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결국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습적으로 사드 비용 문제를 거론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4] 협상용 발언이라면 트럼프의 노림수는

방위비 분담 협상때 ‘증액 근거’로 들이댈수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미국 우선주의’ 실천을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면 함께 발언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선수(先手)일 가능성이 크다. 사드 비용 문제를 제기해 협상력을 극대화한 뒤 실제로는 FTA 재협상에서 자동차나 법률, 의료 분야 등에서 한국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사전 포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드 배치를 고리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관련해서도 지난해 대선에선 “나토 회원국들이 방위비를 더 내지 않으면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을 침략하더라도 미국이 자동 개입하는 조항을 없앨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결국 나토 회원국들이 방위비를 더 내겠다고 하자 최근 “나토는 중요하다”며 한발 빼기도 했다.

사드는 물론이고 향후 한국에 전개될 미군 전력에 대한 ‘사용료’를 요구하기 위해 이날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도발 시 한국에 전개되는 전략폭격기 같은 ‘긴급 대응전력’에 대해서도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을 통해 한국에 청구서를 들이밀 개연성도 있다.

향후 한국의 사드 추가 구입 또는 배치 비용 부담을 요구하기 위한 포석일 수도 있다. 실제로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1개 포대로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을 방어할 수 없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이미 사드 추가 배치론이 나오고 있다. 이 경우 한국이 추가로 1개 포대를 자체 구입하거나 미 본토에서 사드 포대를 추가로 보내는 데 들어가는 ‘동맹비용’을 더 많이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5] 한국정부에 통보했나

틸러슨-매티스 방한때, 黃대행에 관련언급 안해


트럼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에 사드 비용을 내는 게 적절하다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 이를 통보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화법은 주술 관계가 모호하고 종종 논리의 비약이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자신을 도청했다고 주장했다가 근거가 희박하다는 비판을 받자 “도청이 아니라 전반적인 감시”라고 말을 바꾼 적도 있다. 하지만 취임 후 외교 문제는 표현을 조심해온 만큼 최근 방한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 등을 통해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고 인식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이에 한국 정부는 트럼프의 주장에 대해 “처음 듣는 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6일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과 통화했지만 사드 비용 분담에 대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무총리실도 트럼프의 발언을 부인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틸러슨, 매티스 장관 방한 때 각각 면담했지만 비용 부담 같은 언급은 없었다는 것이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 윤상호 군사전문기자·신나리 기자
#트럼프#사드#한미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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