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법의 도리는 고통 따르지만, 오래도록 이롭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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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퇴임식서 한비자 인용해 법치 강조


“폭풍우 치는 바다의 한가운데였습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55·사법연수원 16기)은 13일 오전 11시 퇴임사를 통해 헌법재판관의 자리를 이렇게 나타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고뇌와 갈등이 응축된 표현이었다.

이 권한대행은 이어 “우리 헌법재판소는 바로 엊그제 참으로 고통스럽고 어려운 결정을 했다”며 “헌법의 정신을 구현해내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헌재를 압박하는 탄핵 찬반의 소용돌이 속에서 헌법과 법치의 기준으로만 탄핵심판을 했다는 의미였다.

또 그는 퇴임사에서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法之爲道前苦而長利·법지위도전고이장리)”는 중국 전국시대 법가(法家) 사상가인 한비자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비록 오늘은 이 진통의 아픔이 클지라도 우리는 헌법과 법치를 통해 더 성숙한 민주국가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재판관 8명의 ‘전원 일치’ 결론이 내려지기까지 이 권한대행의 공이 컸다고 한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출근해 동료 재판관들과 식사를 같이하며 견해차를 좁히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탄핵심판 선고 바로 전날 점심과 선고 당일 아침도 다른 재판관들과 함께하며 재판부 전체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도록 애썼다는 것이다.

특히 성향 차이가 있는 한 재판관과는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사건에서 뜻을 같이한 뒤 지속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논의를 전개하며 호흡을 맞춰 왔다. 이 권한대행이 퇴임사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민주주의의 요체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데 있다”고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권한대행은 사법연수원 교수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거쳐 대전고법 부장판사 시절인 2011년 3월 14일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헌법재판관이 됐다. 여성으로서는 두 번째였다. 통진당 사건의 주심 재판관을 맡았고, 청탁금지법 헌법소원과 국회선진화법 권한쟁의심판 등 주요 사건에서 대체로 다수 의견을 냈다.

이 권한대행의 퇴임식에는 탄핵심판 사건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 등 7명의 재판관을 비롯해 헌재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했다.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을 제외하면 외부 인사는 거의 없었다. 남편인 신혁승 숙명여대 교수(56)와 자녀 등 가족은 참석하지 않았다. 헌재 관계자는 “이 권한대행이 조촐한 퇴임식을 원해 가족들도 초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헌재 앞에 “사랑합니다” 꽃다발 13일 60대 여성이 헌법재판소 맞은편 가로수 아래 놓고 간 꽃다발. “잊지 않겠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손편지도 함께 있었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헌재 앞에 “사랑합니다” 꽃다발 13일 60대 여성이 헌법재판소 맞은편 가로수 아래 놓고 간 꽃다발. “잊지 않겠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손편지도 함께 있었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퇴임식을 마친 이 권한대행은 7명의 재판관 등과 헌재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오후 2시 반경 헌재 관계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헌재를 떠났다. 이 권한대행이 탄 차량이 헌재를 빠져나갈 때 탄핵에 찬성한 시위대는 “재판관님 파이팅”이라고 격려했고, 반대한 측은 비난 구호를 외쳤다. 이날 오전 일찍 헌재 정문 맞은편 가로수 아래에 꽃다발과 손편지를 놓고 간 60대 여성도 있었다. 헌재 정문 앞에서 이 권한대행의 차량이 빠르게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본 일부 시민들은 “4시간 넘게 기다렸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이 권한대행은 당분간 특별한 일정이나 계획 없이 자택에 머물며 휴식을 취할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 권한대행의 퇴임 후에도 최고 수준의 경호를 유지하기로 했다.

허동준 hungry@donga.com·배석준·정지영 기자
#이정미#퇴임식#꽃바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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