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박근혜 대통령을 헌법재판소에 탄핵소추한 이후 여야를 막론하고 입에 담기 힘든 막말경쟁을 벌이고 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촛불집회에서 “가짜 보수를 횃불로 불태워버리자”고 말한 것과 같은 당 추미애 대표가 새누리당과 김무성 전 대표를 ‘부역자’로 지칭한 것에 대해 맹비난하면서 두 사람의 사죄를 요구했다. 새누리당 자신도 막말하기는 마찬가지다. 친박 반박 간에 서로를 ‘친박 5적’이니 ‘패륜·반란군’이라 욕하면서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박정희 정권 초기인 1960년대 중반에 ‘무한정치’라는 말이 유행했다. 제1야당인 민정당 대표최고위원 윤보선 전 대통령은 박 정권을 향해 “독선적이고 무궤도한 무한정치를 지양하라”고 요구했다. 당시에 군부의 힘을 배경으로 한 무한정치가 판을 쳤다면 요즘에는 ‘촛불혁명’을 배경으로 한 막말의 무한정치가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휴일도 마다하고 심의를 서두르고 있는데도 국민의당 김동철 비상대책위원장은 헌재의 선별심리 거부가 헌재의 존립 근거를 의심케 하는 반(反)국민적 발상이라고 경고했다. 야당은 탄핵소추안에 13가지의 탄핵 사유를 열거해 놓고 헌재의 심리에 시일이 필요하게 되자 “전부 말고 몇 가지만 심리하라”는 무리한 주장을 폈다가 헌재로부터 “사또 재판은 없다”는 반격에 부딪히자 이처럼 노골적인 간섭을 서슴지 않았다.
야당이 그동안 국정 역사 교과서에 반대하고 있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하필이면 이렇게 말했다. “국정 역사 교과서는 박 대통령이 아버지를 미화하기 위해 추진한 것으로, 박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마당에 더 추진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 책을 간절히 바랐던 박 대통령에게 헌정본 한 부 정도 기부하고 나머지는 폐기해야 할 것이다.”
정치 지도자들의 사려 없는 언행은 외교 문제의 경우에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현재 민주당과 국민의당 책임자들은 한미 간에 합의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한일 간의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 및 위안부 문제 합의를 뒤집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민주당 추 대표는 특히 사드에 관해 “중국의 보복 조치 등 정부가 손놓고 있는 현안을 낱낱이 점검하겠다”고 했고, 국민의당 김 위원장도 “사드 배치와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등 중대 현안은 더 진행하지 말고 새 정부에서 국민적 합의에 기초해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야당 지도자의 이 같은 발언은 수권정당을 지향하는 공당의 언행으로서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사드 문제는 이미 올 7월 한미 양국 간에 결정된 사항이고,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은 올 11월 한일 양국 간에 체결되었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역시 작년 12월 합의되어 이미 시행되고 있는 사항이다. 외국과 합의된 사항을 야당 지도자들이 경쟁이나 하듯이 박 대통령 탄핵소추를 틈타 무효화시키겠다는 것은 일종의 무한정치 경쟁이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과 관련해서는 야 3당이 한민구 국방장관을 탄핵소추하겠다고 하다가 여론이 나빠지자 해임건의안 제출 검토로 후퇴한 바 있다. 야당은 이 협정을 ‘제2의 을사늑약’ 운운하면서 졸속 체결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미 1989년부터 한국 측 제안으로 양국 간에 논의된 협정이다. 한국은 그동안 러시아 등 32개국과 이 협정을 체결했으며, 중국 등 11개국과는 체결을 제안한 상태다.
중국 정부는 박근혜 탄핵소추가 이루어지자 “한국의 정국이 빨리 안정되고 회복되길 바란다”면서도 “미국이 한반도에서 사드를 배치하는 것을 결연히 반대한다. 이는 중국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서다”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국회 탄핵안 가결이 사드 배치에 새로운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정부는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 계획이 이행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마이크 로저스 미 하원 군사위 전략소위원장은 “한국 야당의 사드 배치 반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사드와 위안부 문제, 그리고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은 탄핵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외국과의 합의사항이다. 국가 이익을 외면한 무한정치는 외세에 쉽게 이용당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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