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내수 위축시킬 김영란법 시행령, 母法부터 보완하라

  • 동아일보

국민권익위원회는 어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법이 시행되면 공직자, 국공립 및 사립학교 교수, 언론인이 직무 관련이 있는 사람에게서 3만 원 넘는 식사 대접을 받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5만 원 넘는 선물 혹은 10만 원 넘는 경조사비를 받아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이 법 시행으로 내수 위축을 우려하면서 선물 가격 상한선을 합리적 수준에서 정하겠다고 밝혔으나 결과는 대통령의 말대로 되지 않았다. 한우 선물세트의 90% 이상이 10만 원을 넘는다. 농축수산업계와 화훼업계는 침통한 분위기다. 이 법이 시행되는 9월 28일 이후 내수가 급속히 침체될 우려가 높다.

법은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1회에 100만 원, 연 300만 원을 받으면 처벌한다. 100만 원 이하라도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받은 금품의 2∼5배 과태료를 문다. 다만 원활한 직무수행이나 사교·부조를 위한 소액의 식사나 선물은 허용했다. 권익위의 이번 시행령안은 그 기준을 정한 것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공직부패를 근절한다는 모법의 취지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과잉·위헌 소지가 있는 부분은 앞으로 공청회를 거치며 다듬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정부안이 비중을 뒀던 공직자의 이해충돌 부분은 빠졌다. 의원들은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부분에서도 교묘히 직무 관련성에서 빠져나갈 통로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사립학교 교사와 언론인까지 포함시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제기돼 있다. 배우자를 포함시킨 것도 과잉이다. 공직자의 배우자인 줄 모르고 무심코 밥을 사면 과태료를 물 수 있다.

김영란법은 옳은 법이지만 완벽하진 않다. 특히 입법과정에서 국회의원이 지위를 이용해 자녀 특채를 청탁하는 것 같은 ‘이익 충돌 방지’ 조항이 누락된 것은 큰 문제다. 본래 취지를 되살려 이 법의 무리한 부분을 걷어내고 빠진 부분을 20대 국회에서 시급하게 보완할 필요가 있다.

모법이 고쳐지지 않으면 시행령은 무리하게 설정된 범주 내에서 제정될 수밖에 없다. 법 시행까지 5개월도 남지 않았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시행령은 물론 법까지 고쳐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헌재의 신속한 결정이 필요하다.
#국민권익위원회#김영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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